‘선친께서는 청년 시절에 일본에 징용을 다녀오시고…’
지인의 부친상에 조문하러 갔더니 빈소 입구에 붙은 A4 용지가 눈에 띄었다. 고인의 생애를 요약한 글이었다. 상주에게 어느 지역에 징용을 가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물었더니 “여러 번 들었는데도 세월이 지나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변했다. 선친이 남긴 일기장이나 회고문도 없고 친지 어르신도 모두 별세해서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와는 달리 선친의 행적을 치열하게 추적해 두툼한 책으로 낸 아들이 있다. 신문기자 출신인 김창희 작가는 어느 날 집에서 낡은 상자를 발견한다. 열어보니 사진 필름뭉치와 수첩 10여 권이 들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과 일지(日誌)였다. 아들은 이 내용을 따라 경남 통영을 찾아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옛 지인들을 만난다. 만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광복 후 평양에서 살다 6·25 전쟁 때 월남해 1953년 통영에 정착한다. 통영여중 수학 교사로 근무할 때인 1958년 아들은 태어난다. 아들은 아버지의 옛 동료교사와 제자들을 찾아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듣는다. 이렇게 하여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책이 탄생했다. 부제는 ‘통영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제3자인데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필자는 2010년 가을 과천 노인복지관에서 개설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맡은 적이 있다. 20명에 가까운 참여자들은 1930년대, 1940년대 출생자로 저마다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온 분들이었다. 굴곡 많은 그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10주 동안 주 1회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이 자신의 인생 역정을 발표하고 기록하도록 했다. 이분들이 살아온 시대의 큰 사건인 대한민국 건국과정, 6·25전쟁, 4·19혁명, 5·16 군사정변, 경제개발, 베트남전쟁, 새마을운동 등 근현대사를 함께 공부했다. 어느 입담 좋은 어르신은 실감나게 4·19 당시의 체험을 발표했다.
“제가 그때 이기붕 부통령 집에 몰려간 시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난생처음 냉장고란 물건을 봤는데 열어보니 산해진미가 그득하더군요.”
각자 사진앨범을 들추어 추억을 되살리도록 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는 분은 구술하면 가족이 정리하도록 했다. 복지관 소속의 사회복지사가 도와주기도 했다. 종강 때까지 자서전 문집을 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웅호걸, 재벌총수, 대예술가만 회고록을 내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주인공이기에 얼마든지 자서전을 쓰실 만합니다!”
이렇게 독려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분들이 점차 집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종강일을 맞았고 책자가 완성되었다. 민초(民草)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렬한지 일깨우는 내용이었다. 각자가 미니 자서전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자는 감격에 겨워 목소리가 떨렸고 청중은 눈시울을 붉혔다. 발표 시간만큼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선 기분이었으리라. 어느 어르신은 내용을 보완해 별도의 독립 책자를 출판하겠다고 다짐했다.
칠순, 팔순을 맞는 어르신이 소박한 자서전을 내 가족끼리 출판기념회 겸 칠순, 팔순 잔치를 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후손에게 큰 교훈을 줄 자료가 되리라. 비매품으로 소량 제작하면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이청준(1939~2008) 소설가의 작품 가운데 『자서전들 쓰십시다』란 연작소설이 있다. 대필 작가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분식(粉飾) 자서전을 써주는 세태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걸어온 길을 과도하게 장식한 자서전은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다. 사실대로 기록하고 실책도 고백해야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