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제도와 관련해 ‘형의 시효’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가장 오래 수감중인 사형수의 복역 기간이 29년 4개월에 이르면서 형법 제78조가 정한 사형의 시효인 30년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77조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시효가 완성되면 그 집행이 면제된다’고 규정하면서, 제78조에서 사형의 경우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지 않고 30년이 지나면 시효가 완성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형법이 사형수의 구금기간에 대한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시효가 지나면 사형수를 구금할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는 주장과 사형 집행을 위해 구금된 사형수의 경우에는 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법무부는 “사형 시효가 진행되지 않아 법적 지위 변경 없이 계속 구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1일 법률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방화치사 혐의로 1993년 11월 23일 사형을 선고 받은 원모 씨는 현재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쟁점은 사형수가 사형 집행 전 구금 상태로 대기하는 기간을 집행 과정으로 볼 것인지, 집행을 하지 않은 상태로 볼 것인지다.
법무부는 원 씨가 교정시설에서 보낸 29년 4개월은 사형 집행 대기 상태이므로 구금 됐던 때부터 시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1조와 제89조는 사형확정자를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원칙적으로 독거수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 조항들을 근거로 사형 집행이나 사형 집행 대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금을 해야 하는데, 구금은 사형 집행의 일부를 구성하므로 시효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에 따라 사형 선고를 받은 지 30년을 넘기는 올해 11월 이후에도 원 씨를 계속 구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형이 장기간 집행되지 않으면서 원 씨와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 원 씨 이후로는 1995년에 사형을 선고 받은 4명이 2025년에, 1996년에 선고 받은 5명이 2026년에, 1997년에 선고 받은 5명이 2027년에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
29년 4개월째 최장기 복역 사형수
30년 사형 시효 적용 대상 되나
법무부 “구금은 사형집행 일부를 구성
시효 진행 안돼”
“사형 집행 위해 끝없이 구금"
"형의 시효 제도에 반해”
지적도
한 로스쿨 교수는 “법무부가 형법을 사형수에게 불리하게 해석하고 있다”며 “징역은 자유형이고 사형은 생명형이다. 자유형은 구금 상태도 형집행에 해당하지만 생명형은 집행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 고위 검찰 관계자는 “사형을 집행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면 형의 시효가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집행을 하기 위해 끝없이 구금할 수 있다면 형의 시효 제도 목적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사형의 시효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이 되지 않는 한 혼란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수용시설 수감이 사형 집행의 착수라고 보는 입장은 형 집행기관의 편의에 따른 해석으로 보인다. 체포한 후부터 형 집행을 착수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사형수들은 미결수가 아닌 기결수로 분류돼야 한다”며 “시효를 넘겨 구금할 수 있다면 사실상 종신형을 도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위헌성이 있어 보인다. 법 개정 등 빠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석방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사형에 대한 시효를 연장·배제하거나, 시효 만료 이전에 사형수들을 무기징역 등으로 감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형제를 운영 중인 일본에서도 80년대에 제국은행 강도살인사건의 사형수 히라사와가 집행 시효인 30년을 넘겨 구금한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일본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으나 추가적인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일본은 지난 2010년 형법을 개정해 사형에 대한 시효를 없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사형을 시효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형법 개정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후 단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다.
박선정·정준휘·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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