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에서 상대방 주장에 대한 반박을 준비하는데 의뢰인이 자기 주장을 증명해줄 증인이 있다고 하여 함께 만나 사실확인을 위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신문사항을 준비하는 중에 의뢰인의 주장과 안 맞는 부분이 있어 증인에게 의뢰인의 주장과 맞지 않은 사항을 위주로 의문나는 점을 여러 각도에서 심도있게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의뢰인 주장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조심스럽게 언급하자 의뢰인은 처음엔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하다가 ‘왜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냐’고 해서 ‘재판에서는 사실대로 주장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의뢰인은 정색을 하며 ‘상대방은 허위 주장을 거침없이 하는데, 왜 우리는 당하기만 해야 하느냐,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따지면서 ‘소송에 지면 우리만 억울하다. 누가 책임지느냐’고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에 ‘사소한 것이라도 사실과 다르게 주장하였다가 재판부가 알게 되면 오히려 다른 주장까지 믿지 않게 된다’고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결국 사실대로 주장하고 재판을 마쳤다. 원래 의뢰인이 피해자로 승소함이 마땅한 사건이었지만 상대방의 거짓 주장 때문에 불안해하던 의뢰인은 승소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수긍하였다. 승소를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패소하였다면 그 원망을 어떻게 다 들었을 것인가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민사, 형사, 행정 사건 구별하지 않고 재판에서 참으로 많은 거짓말들이 넘쳐난다. 상대방의 거짓 주장에 대해 정직하게 반박하여 승소할 때마다 변호사로서 ‘정의의 대리인’이라도 된 양 남다른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다.
변론주의가 당사자의 거짓 주장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냐
부지불식간에 오가는 모든 거짓말
제재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악의적인 거짓 주장에 대해서는 대책 필요
그런데 이러한 혼돈 속에서 의뢰인의 거짓말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변호사는 모르는 체할 것인가? 시험문제라면 답은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피가 철철 흐를 것 같은 현실이 적나라할 경우엔 그 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 변호사라면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든 알게 된 의뢰인의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법정에서 주장하는 일을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의뢰인의 주장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을 때 굳이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까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답을 해줄 수 있는 변호사가 얼마나 될까? ‘의뢰인의 말을 믿고 억울한 사정을 대변해주면 될 것을, 굳이 파헤칠 의무나 필요까지 있을까? 의뢰인과 변호사간 비밀유지의무와 선량한 관리의무, 충실의무 속에서 의뢰인의 이익에 반할 수 있음에도 변호사에게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입장이 있는 반면, ‘의뢰인의 거짓말을 “의심 없이” 내지 “의심의 여지를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아니한 채” 법정에서 그대로 주장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옳은가?’라는 입장도 있을 것이다.
위임계약을 체결한 이상 변호사가 법적 근거 없이 의뢰인의 거짓 주장을 바로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변론주의가 당사자의 거짓 주장까지 무제한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거짓 주장을 한 당사자에 대하여 ‘형사처벌(법정모독죄), 행정제재(과태료) 등과 같은 법적 제재’나 ‘소송법상 거짓 주장과 관련된 공격방어방법은 실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재판상 불이익’을 신설하지 않는 한 의뢰인의 거짓말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현행법상 위임계약해지나 소송대리 사임 등 소극적 조치만 할 수 있음). 만약 그러한 제재가 신설된다면 변호사도 그러한 법적 불이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의뢰인을 위해서라도 거짓 주장을 하지 말 것을 적극적으로 경고하거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오가는 모든 거짓말까지 제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악의적인 거짓 주장에 대해서는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정욱 변호사(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