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1.]
1. 들어가며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은 건물의 구분소유를 인정합니다(집합건물법 제1조). 그러나 상가건물 등에 있는 점포(이하 ‘구분점포’)는 집합건물법에 의한 구분소유권을 인정받기 쉽지 않습니다. 영업을 위해 구획을 없애기도 하고, 구획을 새롭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이른바 ‘오픈상가’). 이러한 경우 ‘구조상 독립성이 없다’고 하여 구분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픈상가로 활용되는 구분점포의 사정을 고려하여 2003년에 구분점포의 구조상 독립성을 완화하여 주는 조항을 신설하기도 하였습니다(집합건물법 제1조의2).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분점포의 구분소유권은 여전히 여러 종류의 민사 사건에서 쟁점이 됩니다. 아래와 같은 사례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① 구분점포를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자신들이 분양받은 구분점포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아 구분점포의 구분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양계약은 불가능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으로서 무효이다. 분양회사는 무효인 분양계약에 따라 수령한 분양대금을 수분양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소를 제기하는 경우
② 경매절차에서 상가(구분건물)를 낙찰받아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친 자(원고)가 낙찰받은 상가를 점유하고 있는 자(피고)를 상대로 건물인도를 청구하자 피고가 “상가(구분건물)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그에 관한 등기는 무효이다. 그러므로 원고의 건물인도 청구는 부당하다.”라고 주장하는 경우
③ 구분점포에 관한 경매개시결정이 내려지자 채무자가 “구분점포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아 경매의 목적물이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를 신청하는 경우
2. 분양계약의 목적물인 구분점포
첫 번째 사례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2017년에 주목할 만한 판결을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76559 판결). 대법원은 “구분건물의 소유권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매매계약에서 매도인의 소유권이전의무가 원시적 불능이어서 그 계약이 무효라고 하기 위해서는, 단지 매매 목적물이 ‘매매계약 당시’ 구분건물로서 구조상, 이용상 독립성을 구비하지 못했다는 정도를 넘어서, ‘그 후로도’ 매매 목적물이 당사자 사이에 약정된 내용에 따른 구조상, 이용상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사회관념상 불가능하다고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법리를 전제로 대법원은 ‘장차 점포들에 필요한 경계표지나 건물번호표지를 갖추는 것이 사회통념상 불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분양계약을 무효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 문제의 점포들은 집합건물법 제1조의2가 적용되는 구분점포(판매시설)이므로 분양계약 이후 구조상 독립성(집합건물법 제1조의2가 인정하는 완화된 구조상 독립성)이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 ▲ 수분양자들도 집합건물의 현황을 알고 분양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 ▲ 집합건물법도 그동안 구조상 독립성을 완화해왔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위 판결 이전, 기존 대법원 판례는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엄격히 요구하면서도, 가끔씩 요건을 완화하는 듯한 판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초에는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가 중도에 소멸된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구분소유권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고(대법원 1999. 6. 2.자 98마1438 결정, 대법원 2014. 2. 21.자 2013마2324 결정 등), ‘최초로 등기할 당시에는 구조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이후에 집합건물법 제1조의2에 의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도 등기의 유효성을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16. 1. 28. 선고 2013다59876 판결). 그러나 위 판결처럼 ‘최초로 등기할 당시에도 구조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소송 당시까지도 구조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사안’에서까지 ‘구분소유권이 성립 및 존속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굉장히 획기적입니다.
하지만 위 판결의 직접적인 쟁점은 ‘구분소유권의 성립요건’이 아니라 ‘계약의 유효성’이었으므로, 구분점포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에 관하여 다소 과감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위 판결에서 ‘구분소유권의 성립요건’은 ‘계약의 유효성’이라는 직접적인 쟁점을 판단하기 위한 전제였을 뿐입니다. 계약의 유효성을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구분소유권의 성립요건’은, ‘물적 지배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분소유권의 성립요건이 장차 충족될 가능성이 전혀 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지’라는 느슨한 기준에 의해 판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대법원 판례들보다 더 나아간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3. 경매의 목적물인 구분점포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에서는 경매절차가 등장합니다. 따라서 ‘계약의 유효성’이 쟁점이었던 첫 번째 사례에 비해 구분소유권이 미치는 물적 지배 범위의 문제가 더욱 예민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이러한 사안들에서는 구분점포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더욱 엄격히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 ‘수백 개의 구분점포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 당시에 각 점포를 구분할 수 있는 벽체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채 도면상으로만 점포가 구분될 수 있을 뿐이었고, 다만 지하 1층 점포들 사이에는 호수를 구별할 수 있도록 바닥의 타일 색깔을 달리하는 구획선이 그어져 있었으며, 그 후 지하 1층 점포들은 파티션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 사안’에서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고(대법원 2008. 9. 11.자 2008마696 결정), ▲ ‘준공 당시 점포들의 경계에 합판으로 경계벽이 설치되어 구분건물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마쳐졌으나, 그 후 구분소유자가 경계벽을 철거 및 통합하여 무도장 등으로 사용한 사안’에서도 구조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11. 9. 29.자 2011마1420 결정).
그런데 대법원은 가끔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완화하는 듯한 판시를 하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당초에는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가 중도에 소멸된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구분소유권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결정을 할 때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법리를 제시합니다(대법원 1999. 6. 2.자 98마1438 결정, 대법원 2014. 2. 21.자 2013마2324 결정 등).
“인접한 구분건물 사이에 설치된 경계벽이 일정한 사유로 제거됨으로써 각 구분건물이 구분건물로서의 구조상 및 이용상의 독립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각 구분건물의 위치와 면적 등을 특정할 수 있고 사회통념상 그것이 구분건물로서의 복원을 전제로 한 일시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복원이 용이한 것이라면, 각 구분건물은 구분건물로서의 실체를 상실한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고, 아직도 그 등기는 구분건물을 표상하는 등기로서 유효하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위 법리 역시 ‘적어도 구분건물로 되는 당시에는 경계벽의 설치 또는 최소한 집합건물법 제1조의2에 따른 완화된 구조상 독립성 요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매 실무에서 집행법원은 ‘집합건축물대장 작성 당시에 각 구분점포 사이에 경계벽 등 경계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지가 설치되어 있었는지, 사후적으로 경계벽 등이 철거된 것이라면 그 시점과 경위 등을 소명하라’는 취지의 보정명령을 흔히 내립니다. 문제는 이러한 보정명령이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에게 내려진다는 점입니다.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채권자가 소명을 하지 못하면 경매개시결정을 취소해 버립니다. 채무자로부터 근저당권을 설정받았을 뿐, 구분점포의 과거 모습을 알 길이 없는 채권자에게는 가혹한 요구입니다. 더구나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었던 채무자가 ‘자신이 담보로 제공한 구분점포에는 경계표지 등이 없어 구조상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자주 불거지기 때문에, 채권자는 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와 같은 불합리를 해소하는 대법원 결정이 최근 선고되었습니다(대법원 2022. 12. 29.자 2019마5500 결정). 대법원은 이 결정에서 ‘채권자가 아니라, 구조상 독립성이 없다고 다투는 측에서 주장·증명하라’는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였습니다.
사안은 이렇습니다. A건설은 B시행사에 구상금 및 대여금 채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B시행사가 채무를 변제하지 않자 A건설은 B시행사가 담보로 제공하였던 구분점포들(이하 ‘이 사건 각 점포’)에 대해 임의경매를 신청하였고, 법원은 경매개시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B시행사는 경매개시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A건설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었던 이 사건 각 점포들은 이른바 오픈상가로서 구조상으로나 실제 이용상으로 다른 부분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아 구분소유권의 객체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제1심은 B시행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임의경매개시결정을 취소하였습니다. 특히 제1심은 ‘집합건물법 제1조의2 및 같은 법 시행령 제1조 내지 제3조가 구분점포의 독립성 요건을 완화해 주었는데, 이 사건 각 점포는 이처럼 완화된 독립성 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A건설은 항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항고심은 제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항고를 기각하였습니다. 특히 항고심은 ‘과거에 경계표지 등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근저당권자인 A건설이 제출하지 못한 점’도 항고기각사유로 들었습니다.
A건설은 대법원에 재항고하였습니다. 대법원은 ‘과거에 경계표지 등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근저당권자인 A건설이 제출하지 못한 점’을 탓하는 항고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주장·증명책임의 소재를 잘못 판단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비록 경매개시 당시를 기준으로 구분점포가 경계벽 또는 집합건물법 제1조의2에서 정한 경계표지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집합건물법이 구분점포에 관하여는 반드시 소관청의 현황조사를 거쳐 그 구조상의 독립성을 갖춘 것으로 인정될 때에만 집합건축물대장에 등록하고 그에 따라 구분등기가 마쳐지도록 정하고 있으므로, 집합건물법 제1조의2가 시행된 2004. 1. 19. 이후 집합건축물대장의 등록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구분등기가 마쳐진 구분점포에 대해서는, 그 등록 및 등기가 마쳐질 당시(준공 당시) 경계표지 등 집합건물법 제1조의2에서 정한 구분소유권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추정을 번복할 만한 그와 다른 사정은 이를 다투는 측에서 주장·증명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채권자에 대한 집행법원의 소명 요구가 부당하다’고 선언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4. 나가며
구분점포의 구조상·이용상 독립성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각 사안의 특수성에 따라 대법원이 비교적 유연하게 판단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양계약의 유효성이라는 관점에서, 또는 경계의 사후 복원의 용이성이라는 관점에서 구분소유권의 요건을 완화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 실무에서는 집행법원이 증명책임(특히 채권자가 파악하기 어려운 구분점포의 과거 현황에 관한 증명책임)을 형식논리적으로 채권자에게 떠 넘기면서 경매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거나, 경매개시결정을 취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행법원의 태도로 인해,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채무자가 태도를 바꾸어 경매의 효력을 다투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이 ‘증명책임은 채권자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였으므로, 일선 경매 실무에도 변화가 있기를, 그리하여 증명책임이 채권자의 권리 실현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철웅 변호사 (cwhan@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