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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혁이 쓰는 인문학 속의 법
(10) 세상의 절반, 여성 차별의 역사
임관혁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2023-05-3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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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의 여성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삼촌과 재혼하는 어머니를 두고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고 하였다. 그런데 근현대 최고의 서양 지성들도 여전히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여자는 자기도 시계를 차고 있다는 걸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차고 다닌다. 시계가 멈추어 있는지 정확한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칸트
여자들은 꾀가 많지만 항상 주관적이므로 천재가 나올 수 없다. - 쇼펜하우어
여자들은 정신적 승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넘치는 성욕으로 고통받는다. - 프로이트


고대 그리스에서 여자는 외국인, 노예와 더불어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동성애가 발달한 이유는 여자와는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도 여자에게는 참정권이 없었으며 가부장제 사회였다. 중세 가톨릭의 유럽에서도 여자는 남자의 보호 아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스, 로마와 다를 바 없었다. 이슬람 세계의 여인들도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유럽에는 여성의 음부를 가리는 자물쇠가 달린 ‘정조대’라는 게 있었는데, 12세기 십자군 기사들이 원정 갈 때 아내와 애인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채웠다. 중세 말기인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여성들은 마녀사냥으로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됐다.

근대 계몽주의와 시민혁명의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여전히 여성은 이성의 주체도, 인권의 주체도 아니었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은 19세기 중반이 배경인데, 아버지가 결혼하는 딸 잔느에게 “너의 모든 것이 네 남편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1920년 21세 이상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였고, 영국에서는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참정권이 인정되고 1928년 모든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프랑스에서는 1946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은 여전히 참정권과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다처제를 취하는 나라가 있고, 파키스탄처럼 아내에게 3번의 이혼 통보(‘Triple talaq’)만으로 이혼 성립을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서양사에서 간간이 등장한 여왕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엘리자베스 여왕 재위 시 잉글랜드는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위계승전쟁의 국난을 잘 극복하였고,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는 영토를 확대하고, 학예와 교육에 관심을 쏟아 계몽군주로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왕들은 왕위 후계자로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 우연적으로 왕이 되어 남자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남성 위주의 정치질서를 바꾸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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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 20세기 초 영국 여성들의 투표권 획득을 위한 투쟁을 그렸다

   


동양사의 여성
여자는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한을 사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다. - 공자
여자는 긴 머리에 짧은 지식을 지녔다. - 중국 속담

중국은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每(매양 매)는 비녀를 하나 꽂은 어머니(母)는 항상 변하지 않는 꿋꿋한 존재라 하여 매양이란 뜻이 나왔고, 毐(음란할 애)는 비녀가 둘이라서 음란하다는 뜻이며, 毒(독 독)은 비녀가 셋이라서 독하다는 뜻이 나왔다.

청나라에서는 여성에게 미용 등 목적으로 전족을 강요했는데 전족은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 모두를 발바닥 쪽으로 구부리고 꽉 졸라매 발가락이 모두 부러지고 살점이 썩을 정도였다.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태후,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는 권력을 전횡하고 악정을 일삼았다고 하여 중국 3대 악녀라고도 한다. 그러나 측천무후는 능력 위주로 관료를 등용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된 시기였다는 평가도 있는 등 남성들의 편견으로 이들에 대한 기록이 상당히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에서도 여성의 지위나 사정은 중국과 다르지 않았다. 적당한 아들이 없을 때 여성 천황이 10회 정도 등장하였으나, 일시적이었으며 실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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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모현관(앞)과 미암박물관(뒤). 박물관에 유희춘의 미암일기(보물 제260호) 등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
여자가 시집살이를 하려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해야 한다. - 한국 속담
여자랑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 - 한국 속언


신라에서는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등 3명의 여왕이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에 의하면 성골만 왕이 될 수 있는데 성골 남자가 없는 때에는 성골 여성이 왕위를 이었던 것이다.

조선 중기까지 남자·여자, 장남·차남 등 구분 없이 균분상속을 했으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낮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 각종 전란과 기근으로 살림이 궁색해지고 유교질서가 강화되면서 장자상속이 일반화되고 남존여비 사상이 강화되었다. 또한, 정치는 물론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여성은 나서지 않는 게 법도이자 관습이었다. 양반 가옥에서 남자들이 머무는 사랑채와 여자들이 머무는 안채를 구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사임당이 빼어난 화가이자 문인이지만 후대에 부덕(婦德)의 상징으로서 우뚝 서게 된 것은 기호학파의 맥을 이은 송시열이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 이이를 낳았을 것’이라고 칭송한 데서 비롯된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에 대하여 위로하고 감싸주기는커녕 오랑캐들에 의해 몸이 더럽혀졌다고 ‘화냥년’이라고 비하하며 내쫓던 게 당시의 수준이고 현실이었다.

고려 목종의 어머니인 천추태후, 조선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우리나라 3대 악녀’로 꼽히기도 하지만, 조선 사대부들에게 ‘여성 권력자’는 용납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실상보다 왜곡된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와 집안의 차별과 달리, 부부관계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여성이 비교적 대등한 지위를 누리는 경우도 있었다. 미암 유희춘(柳希春)은 선조 때 이조참판을 지냈는데, 부인 송 씨는 호가 덕봉(德峯)이다.

유희춘이 ‘婦人出戶鼻先出’, 즉 ‘부인이 문밖에 나감에 코가 먼저 나가더라’라며 부인의 콧대가 세다고 하니, 송덕봉은 ‘夫君行路纓掃地’, 즉 ‘남편이 길을 다님에 갓끈이 땅을 쓸더라’며 남편이 키가 작다고 맞받아친다.

유희춘이 1570년 홍문관 관리로서 4개월 동안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자랑하자, 송덕봉은 ‘군자라면 결코 자신의 선행을 과시하지 않는 법’이라며 ‘나이가 예순이 가까워오니 이렇게 홀로 지내는 것은 당신의 기운을 보충하는데 이로운 것이지 내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되었지만, 여성의 정치적 진출은 미미했고, 결혼, 상속, 이혼, 교육, 취업, 임금, 지위, 해고 등 가정과 사회 곳곳에서 여성은 차별을 받아야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동양·서양, 고대·중세·근현대 가릴 것 없이 이어져 왔다. 근현대 최고의 서양 지성들조차 여성을 노골적으로 비하했을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양성평등기본법’ 등 법률, 제도의 정비로 차별이 완화되고 있지만 임금 차별, 육아 부담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평등을 위해서는 차별적 정책·제도의 개선은 물론, 유년 시절부터의 성평등 교육, 기관·단체 주도의 성평등 문화 확산 노력 등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세상의 절반을 위하여
우리 헌법은 성의 평등과 차별금지를 천명하고 있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일하는 여성들이 각종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족돌봄 휴직 등을 보장하고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은 성별 영향 분석 평가, 성인지 교육 등을 명문화하고, 특정성별의 참여가 현저히 부진한 분야에 대하여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이 법에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20% 이상 임금을 적게 받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30% 이상으로 나타난다. 여성은 여전히 임신, 출산 및 육아 부담을 대부분 감당해야 하고, 이로 인한 경력 단절을 피하기 어렵다. 아직도 여성을 상대로 한 성희롱이 버젓이 벌어지는가 하면, 스토킹,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의 대상은 주로 여성이다.

남성의 병역 의무,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불행해서는 남성도 행복할 수 없다.

성평등을 위해서는 각종 차별적 정책·제도의 개선은 물론, 유년시절부터의 성평등 교육, 기관·단체 주도의 성평등 문화 확산 노력, 여성의 적극적인 취업 등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근래 여성 취업률이 늘고 있고, 공무원시험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경찰관, 소방관 등 금녀의 영역이 깨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임관혁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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