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속행 공판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지만 증언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 대한 제266차 공판을 열었다.
오전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임 전 차장은 검찰의 모든 질문에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답변했다. 앞서 5월 26일에는 법원에 증언거부사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역임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재판부가 임 전 차장의 증언거부에 대해 "본인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 있다는 취지인가"라고 묻자, 임 전 차장은 "그렇다"고 답변했다.
형사소송법 제148조는 '자신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으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은 같은 사건으로 2018년 11월 기소돼, 별도로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 조승우, 방윤섭 부장판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검찰의 질문과 임 전 차장의 증언거부가 반복되자, 피고인 측의 한 변호인은 "모든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나온 이상 이렇게 하나하나 검찰이 질문하고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소송경제상 부적절한 것 같다"며 "재판부에서 적절한 소송지휘권을 발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임 전 차장은 "증인(본인)의 경우 관련 사건 피고인이라는 특수한 지위가 있고, 피고인에게는 자기부죄거부 원칙에 따른 진술거부권이 형법상 보장돼 있다"며 "소송법상 의무와 형법상 권리가 충돌하는 경우 후자가 우월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법리"라고 주장했다. 또 "이와 같이 계속된 무의미한 신문은 형법상 권리를 침해하며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검찰 측은 "임 전 차장은 본인의 재판에선 아주 적극적으로 사실관계와 법리적 다툼을 하면서도 이 재판에선 검찰의 진정성립마저 응하지 않고 있다"며 "당연히 증인에게는 증언거부권이 있지만, 이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지, '검사의 질문 자체를 봉쇄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주요 질문이 무엇이고 어떤 질문에 대해 증언을 거부했는지 소송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검찰 입장"이라며 "증언거부를 감안해 압축되고 핵심적 흐름에 관련된 질문으로만 준비했으니 최소한 그 정도의 질문권 행사는 허용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검사는 계속 질문하고, 증인은 증언거부할 내용은 거부하고 답변할 내용은 답변하라"며 증인신문 절차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검찰의 질문과 임 전 차장의 증언 거부는 동일하게 '질문과 거부'로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2019년 2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한 혐의, 법관사찰 및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지시 혐의 등으로 기소돼 4년 넘게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을 제외한 증인들의 증인신문을 마쳤고, 이달부터 주 2회씩 재판을 열어 집중 심리에 들어간다. 사실상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마지막 순서였던 만큼,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증인신문 절차가 끝나면 결심 공판을 거쳐 선고 기일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법조에선 올해 안에 양 전 대법원장 등의 1심 선고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