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코트 6년’ 동안 가장 큰 사건은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재판일 것이다. 세 차례의 법원 자체 조사에서 시작해 검찰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고, 1심 재판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김명수 코트 6년뿐 아니라 사법부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더 큰 논란과 역사적 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률신문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을 충실히 남긴다는 의미에서,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을 균형있게 전한다는 차원에서 주요 피고인 3명의 최후진술 전문을 보도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박병대(66·12기) 전 법원행정처장은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재판장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단호한 어조로 지난 정권과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했다. 또 이 사건 재판을 ‘역사적 기록에 남을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사법부 안뜰에 와서 '지난 정권 재판거래와 사법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주문했고, 대법원장은 통렬히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신의 확고한 생각이며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마주 손뼉을 쳤다. 재판거래가 실제 있었든 말든, 블랙리스트라고 할 만한 것이 있든 없든 이 사건은 그냥 막무가내로 이 나라 사법과 법원을 제멋대로 희롱한 ‘사법농단’ 사건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됐다“며 ”이 재판은 그런 사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줄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사기록에서 법관들의 울분과 분노가 묻어나는 진술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이었다"며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법부의 신뢰에 너무 큰 손상을 입힌 것은 아닌지 후배 법관들에 대해 참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곡히 바라건대 오로지 형사법의 법리와 증거에 의해 엄정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열린 결심공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 박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징역 5년,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선고기일을 12월 22일 오후 2시로 지정했다. 2019년 2월 기소된 이후 4년 7개월 만에 선고기일을 제외한 1심 재판 절차가 마무리됐으며 1심 결과는 4년 10개월 만에 나오는 것이다.
다음은 박 전 법원행정처장의 최후진술 전문.
존경하는 세 분 부장판사님,
이 재판을 거치면서 인생사 참 덧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만, 제 후임으로 임명된 대법관도 벌써 6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에 퇴임하셨습니다. 저는 그 6년 세월 중 5년 이상을 이 사건 수사와 재판에 묶여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거의 매주 꼬박 2회씩 진행된 공판기일이 오늘로 277회째가 되고, 그 사이에 증인 진술을 들은 기일만도 150회가 넘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서류도 페이지수로 얼마나 되는지는 가늠도 안 되지만 개수만도 12,000개를 훌쩍 넘겼으니 언론의 표현대로 가히 “트럭 기소”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긴 힘든 시간 동안 방대한 기록을 세심하게 살펴 주시고 주장을 경청해 주신 재판부께 먼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이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는 대체로 두 개가 있습니다. 거기에도 이른바 진영논리가 작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사실보다는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쪽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줄기차게 ‘사법농단’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은 처음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재판거래’니 ‘블랙리스트’니 하는 황당한 말들이 마치 사건의 성격을 규정짓는 표지라도 되는 듯이 난무했습니다. “사법 적폐 청산”이라는 깃발이 휘날리고, 법원 주변과 거리는 선동적인 문구로 채워진 플래카드로 뒤덮였습니다. 대통령은 사법부 안뜰에 와서 “지난 정권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이에 대해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신의 “확고한 생각”이며,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하여 손뼉을 마주쳤습니다. 그러니 재판거래가 실제 있었든 말든, 블랙리스트라고 할 만한 것이 있든 없든 이 사건은 그냥 막무가내로 이 나라 사법과 법원을 제멋대로 희롱한 “사법농단” 사건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이 사건 재판은 다들 말하듯이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공소장 내용을 보고 어느 언론인은, “수사 초기 요란하고 창대했던 ‘재판거래’ 프레임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라고 썼지만 재판거래의 망령은 여전히 살아남아 떠돌고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없다’라고 법원조사위원회가 세 차례나 거듭 선언했고, 검찰도 기껏 통상적인 인사업무를 위해 작성된 보고서가 마치 무슨 흑막에 가린 ‘비밀 목록’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버무리고 있지만, 많은 사람의 뇌리에는 수사 때 보도를 통해서 받은 인상이 그대로 잔존해 있는 듯합니다. 이 재판은 우리 사법이 ‘그런 사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줄 역사적 책임이 있습니다.
이 사건의 대부분 공소사실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작성한 내부보고서에 부적절한 문구가 들어간 것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이 직권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는 만큼, 형식적으로는 그에 대한 판단이 유무죄를 가르겠습니다만, 그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연 실제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교감하면서 재판거래를 기도한 사실이 있었는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를 비판하고 그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비판세력을 무고하게 억압하는 “사법 적폐”라고 할 만한 실체가 있는지 명확한 규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사건 재판이 안고 있는 역사적 책임의 제1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 사건의 고등법원 판결에서는, 이 사건 공소장 첫머리에 불법성의 문패처럼 붙어 있는 “법원의 위상 강화”와 관련하여,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의 사법행정사무를 처리함에 있어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위상 제고와 헌법재판소와의 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염두에 두는 것”이 어째서 위헌적이고 부당하다는 것이냐고 하여 검사의 기소 취지를 정면으로 배척했습니다. 이 사건 판결을 통해서도 “현대판 기축옥사(己丑獄事)”라거나 “사법 사화(士禍)”라고까지 불린 이 사건에 대해 역사의 페이지에 분명하게 기록될 명철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삼십 수년의 법관 생활 중 실로 내키지 않던 법원행정처장 소임이었지만, 어쨌든 그 직을 맡은 이상 오늘날 이런 시비의 빌미가 될 만한 일조차 생기지 않도록 더 치밀하게 챙겼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탓에 이렇게 형사법정에까지 서게 된 것 자체로 법원에 누를 끼친 것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법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돌팔매질한 법원 안팎의 어느 누구 이상으로 저는 사법부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이 사건 공소사실 그 어느 항목에 관해서든 위법한 행위를 한다는 인식하에 공모를 하거나 사심을 가지고 관여한 바는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공소사실은 상고법원을 성사시키기 위해 사법의 가치를 무시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법관들을 탄압하고자 했다는 것이지만, 증거는 한결같이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적절한 문구가 포함된 일부 보고서가 문제 되고 있지만, 단언컨대 저는 그런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그 내용대로 실행하게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이 사건에 관계한 어느 검사는 “100년간 다시(는) 이런 수사(를) 할 기회(가) 없다”고 했다는데, 그 말에 이 사건이 지닌 의미가 참으로 많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추기관의 판단기관에 대한 한풀이 같은 내심의 한 자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사건 수사에 대해 어느 법조인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인 양 흘리고 이를 통한 국민의 분노 여론을 수사에 역이용했다”라고 평가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이 검찰 수사에 이른 배경과 경위, 거기에 작용한 정치·사회적 관계에 대해 저인들 어찌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까만, 피고인이라는 본분에 걸맞지 않는 것 같으니 함구하겠습니다. 다만 하나, 검사의 저 말은 이 사건은 결단코 조각조각 파편에 몰입하여 현미경적으로 관찰할 일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큰 틀에서 거시적 안목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사기록에서 검찰 조사를 받던 법관들의 울분과 분노가 묻어나는 진술을 대하는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재판부의 합의 과정과 증거 채부의 당부를 따지는 검사의 거듭된 질문에 결국 터져 나온 대답, “이 부분이 수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후에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어느 법관의 저항, 그리고 판사실 컴퓨터 자료를 자진 제출하여 수사에 협조하라는 요구에 대해 “아니요, 저는 싫습니다. 누가 제 컴퓨터를 본다는 것이 기분 나쁘잖아요”라고 쏘아붙인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조서에 그렇게 기재될 정도이면 그 분위기가 어땠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급기야 계속된 검사의 무모한 질문에 “그것은 법관의 자존심과 관련된 부분이라 더 이상 물어보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일갈한 그 진술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름지기 자기 존재를 짓누르는 ‘역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인간이 역사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역사를 타고 넘으며 나아가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제 인생의 한 토막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묻혔지만, 포연이 걷히면 실상은 드러나리라 믿습니다. 다만, 이 사건이 오늘에 이른 과정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너무 큰 손상을 입힌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묵묵히 본연의 업무를 수행해 오신 후배 법관들을 위축시키는 깊은 상흔을 남기지나 않을는지, 여러 생각에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 힘든 재판을 감당하고 계신 재판부의 심적·물리적 부담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곡히 바라건대, 오로지 형사법의 원칙과 증거에 의해 엄정하게만 판단해 주십사 하는 소망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한번 오랜 기간 심리에 심혈을 기울여주신 재판부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상으로 제 진술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