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코트 6년’ 동안 가장 큰 사건은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재판일 것이다. 세 차례의 법원 자체 조사에서 시작해 검찰 수사와 기소가 이뤄졌고, 1심 재판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김명수 코트 6년뿐 아니라 사법부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더 큰 논란과 역사적 평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률신문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을 충실히 남긴다는 의미에서, 또한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을 균형있게 전한다는 차원에서 주요 피고인 3명의 최후진술 전문을 보도한다.
고 전 처장은 "행정처장으로서 종전 내려온 업무 관례에 따라 루틴하게 사법행정을 수행했을 뿐, 공소사실이 전제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정처장의 직권을 남용하는 위법행위를 한다는 인식을 추호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며 "제출된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임종헌 전 차장과 문건 작성 지시를 사전에 공모하거나 임 전 차장에 의한 지시행위에 관여한 사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고 전 처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2020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8도2236) 등을 설명하면서 "이 판례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판결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새로운 판단을 제시한 판결이다.
고 전 처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십 명의 동료 법관들이 법원을 떠나게 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고 사법부 구성원간의 분위기가 변해 조직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만 두겠다는 퇴임의 변을 전해들을 때마다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책임감을 떨칠 수 없었다"며 "그들과 함께 감당해왔던 사법행정업무가 결코 위법한 것이 아니었음을 재판부가 확인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디 재판부의 소신과 용기에 찬 판결을 통해 그동안 34년 넘게 각급 법원 판사로서, 그리고 대법관으로서 치열하게 재판해 온 이 사람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간 명예감과 자긍심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열린 결심공판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징역 5년, 고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선고기일을 12월 22일 오후 2시로 지정했다. 2019년 2월 기소된 이후 4년 7개월 만에 선고기일을 제외한 1심 재판 절차가 마무리됐으며 1심 결과는 4년 10개월 만에 나오는 것이다.
다음은 고 전 법원행정처장의 최후진술 전문.
사법부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자 증거 분량도 많고 쟁점도 많은 이 사건의 재판을 오랜 시간 동안 자상하게 심리하여 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검사님들께도 오랫동안 변호인과 함께 실체적 진실 발견에 협조해 주신 점에 대해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저와 상피고인들을 위하여 헌신하여 주신 모든 변호인들께도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 저와 관련된 공소사실의 유무죄를 떠나서 대법관으로서 법원행정처장 재직 시에 있었던 일로 인하여 재판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하여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라고 여기고, 이 재판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3. 실로 오랜 기간에 걸쳐 증인신문과 서증조사가 충실히 이루어졌습니다. 법정에서 드러난 증거에 의하면,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증인들의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 사이에, 저의 변소와 일부 증언 사이에, 증인들의 진술 사이에 서로 상치되고 모순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 있지만, 수사를 앞두고 신병처리와 기소의 두려움 등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입장, 그리고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고 인식의 한계도 있다는 점 등을 두루 참작하여 해당 진술들의 신빙성 유무를 명쾌하게 가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4. 이 사건 공소사실은 6년간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내내,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강화하고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는 등 법원 위상을 강화하고, 대내외적 비판세력을 탄압하기 위하여, 또는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 방침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들, 이른바 ‘튀는 판결’을 선고하는 법관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또는 부당하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하여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정처장으로서 종전 내려온 업무 관례에 따라 루틴하게 사법행정을 수행하였을 뿐, 공소사실이 전제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정처장의 직권을 남용하는 위법행위를 한다는 인식을 추호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계획이나 목적은 심의관의 보고서 기재 한 두 줄을 보고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당초부터 무슨 거대한 음모나 계획이 있었던 것인 양 검찰이 일방적으로 과도한 의심과 비약, 그리고 추단으로 꾸며낸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공소사실은 검찰의 기본적인 프레임 자체에 오류가 있음은 물론, 엄격한 증명이 있다고 볼 만큼 필요한 증거에 의하여 전혀 뒷받침되지 않으므로 피고인들에게 유죄가 인정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부디 재판부께서는 엄격한 증명원칙에 입각하여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5.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은 임종헌 차장이나 이규진 실장과 공모하여 심의관 등에게 위법부당한 내용의 보고서 등 문건의 작성을 지시하였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출된 증거들을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이 임종헌과 문건 작성 지시를 사전에 공모하거나 임종헌에 의한 지시행위에 관여한 사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실제로 보고를 받거나 사후 논의하는 등으로 일부 관여가 있었다 하더라도 공모공동정범으로 인정하는 데 필요한 공동가공의 의사와 임종헌의 구체적 실행행위에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행위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직위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6. 이 사건 기소 당시만 해도 직권남용에 관한 법리 대부분이 대법원 판례로 정립되지 않아서 실무상 혼란이 많았고 따라서 직권남용죄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방어권의 행사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만, 재판이 진행하여 가는 도중 직권남용죄에 관한 중요한 법리를 담고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직권을 남용하여’의 성립요건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의 성립요건을 개별적으로 판단하여 구성요건 해당성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입니다(대법원 2020. 1. 30. 선고 2018도2236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에서는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공무원인 경우 그가 한 일이 형식과 내용 등에 있어 직무범위 내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법령 그 밖의 관련 규정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직무수행의 기준과 절차’란 공무원의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지위, 법령준수의무, 성실의무, 법령과 공익에 따라 직무수행을 할 의무와 같은 추상적인 이념적 지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례에서 보듯이 ‘승진후보자명부에 들어있는 사람만을 승진시켜야 한다’든가 ‘승진인사는 인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와 같은 구체화된 내부 지침이나 기준을 말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 사건 심의관들에게는 그러한 ‘직무수행의 기준과 절차’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의무 없는 일’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공무원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서는 ① 직권 행사의 주된 목적이 본인 또는 제3자의 사적 이익 추구나 청탁 또는 불법목적의 실현 등에 있는 경우나 ② 권한 행사의 형식을 갖추기 위하여 관련 자료나 근거를 작출, 조작, 은닉, 묵비하는 등의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가 개입된 경우 외에는 직권남용죄로 함부로 처벌할 수 없음”을 선언한 판결입니다(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20도15105 판결).
이들 판례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봅니다.
피고인과 관계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그 목적이 피고인들이나 제3자의 사적 이익 추구나 청탁 또는 불법목적의 실현 등에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권한 행사의 형식을 갖추기 위하여 관련 자료나 근거를 작출, 조작, 은닉, 묵비하는 등의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가 개입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특히 중복가입금지 예규 조항은 엄연하게 사법부 내부에서 대내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어 법관들이 준수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법령상의 요건을 구비하였고, 행정처는 여러 사항을 참작하여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설령 임종헌 등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에 대한 견제 등 일부 부적절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직무행사의 목적이 위법하다거나 직권의 행사가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필요성이나 상당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중복가입한 법관들의 탈퇴 역시 의무 없는 일을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7. 저는 34년간 법관의 길을 걸어오면서 제 스스로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재판과 관련하여서는 뛰어난 판결을 남기겠다는 생각보다 실수에 의한 오판을 하지 않으려고 늘 긴장하며 지내왔고, 재판 외적으로는 항시 성실하고 절제 있는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등 사법행정 보직을 맡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국제기준에 손색이 없는 재판실무를 확립하기 위해 미약하나마 열심히 일하였고, 무엇보다도 사법제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편익과 법관들의 업무경감을 생각하며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8.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수십 명의 훌륭한 중견 법관들이 최근 몇 년에 걸쳐 법원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장래 사법부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인정받던 분들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고 사법부 구성원간의 분위기가 변하여 조직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만두겠다는 퇴임의 변을 전해들을 때마다 저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책임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이나 제가 감당해 왔던 사법행정업무가 결코 위법한 것이 아니었음을 재판부께서 확인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같은 시련의 시기를 떨치고 앞으로 우리 사법부가 조속히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감히 기대해 봅니다.
9. 이제 모든 증거조사와 법률적 공방이 마무리 되고,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최종 판단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현명하신 재판부께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피고인으로서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였기에 여한은 없습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부디 재판부의 소신과 용기에 찬 판결을 통해 그동안 34년 넘게 각급 법원 판사로서, 그리고 대법관으로서 치열하게 재판해 온 이 사람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간 명예감과 자긍심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