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송에서의 조정제도가 번거로운 협의이혼을 피해 손쉽게 이혼하기 위한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곧바로 조정을 신청, 재산분할과 자녀양육 등에 합의하고 이혼의 효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협의이혼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1개월 또는 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또 협의이혼 때는 이혼의사확인을 위해 본인이 반드시 법원에 출석해야 하지만 조정에는 대리인이 출석해도 되므로 본인이 반드시 법원에 나올 필요가 없다.
‘홧김이혼’을 줄이기 위해 숙려기간제도를 도입하고 미성년 자녀의 복리문제에 법원이 도움을 주기 위해 지난 해 바꾼 이혼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혼조정제도’를 개선해 악용사례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숙려기간제도 등 도입한 개정민법 시행후 협의이혼 절차 까다로와져=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6년 한해 이혼신고가 접수된 12만5,937건 중 10만9,860건이 협의이혼을 해 전체 이혼사건의 87%를 차지했다. 하지만 홧김이혼이 빈번해 미성년 자녀가 별다른 대책없이 방치되는 등 사회문제의 원인이 됐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과거 협의이혼제도는 이혼에 있어 당사자의 자율적인 결정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었다”며 “그러나 친권행사자 지정, 양육에 관한 합의, 면접교섭권 등 중요한 법률적인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혼인관계만 해소하게 돼 자녀들의 복리는 등한시 됐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민법이 개정됐고 지난해 6월부터 이혼숙려기간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의이혼을 하려는 부부는 일정기간(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 없는 경우는 1개월) 후 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와 함께 미성년의 자녀가 있는 부부의 경우는 협의이혼확인신청을 위해 자녀양육과 친권자결정에 관한 협의사항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법원심사결과 협의사항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경우 법원은 보정을 명할 수 있고, 부부가 보정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이혼을 허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조정이혼’ 이용한 삼성 이재용씨 부부 이혼까지 1주일 걸려= 이처럼 이혼제도가 개선됐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부부가 소송을 내고 조정신청을 할 경우 법원이 미성년 자녀의 복지를 위해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런 복잡한 절차를 피하고 싶은 부부들의 경우 이혼소송을 내 조정으로 즉시에 끝내버리면 그만”이라며 “미성년 자녀의 양육문제는 곧바로 사회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조정과정에서도 숙려기간과 비슷한 제도를 강제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사한 사례가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 부부의 이혼소송이다. 부인 임세령씨가 2월11일 소송을 제기한 날부터 18일 조정이 성립돼 이혼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1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협의이혼을 했다면 이들은 법원에 직접 출석해 안내를 받고 이혼의사를 확인받아야 하며, 미성년 자녀가 있으므로 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들이 조정절차를 편법으로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 조정도 3개월은 걸리게 실무 운영= 서울가정법원의 판사들은 이혼숙려기간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이 같은 법의 허점을 노려 이혼조정을 하려는 부부들이 있을 수 있다는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현재 조정신청을 해도 조정이 성사되는데 최소한 숙려기간 만큼의 기간이 걸리게 실무를 운영하고 있다”며 “조정신청을 하면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자칫 조정신청으로 사건이 몰려 숙려기간제도가 퇴색될 수 있는 만큼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3개월 정도의 충분한 검토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자녀양육이나 재산분할 등에 있어 부부가 정말 완벽히 합의를 본 예외적인 경우에는 조속히 확정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이번 이재용씨 부부 이혼사건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