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률구조제도를 '전담변호사 시스템'에서 '개업변호사 시스템'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전담변호사 시스템(Salaried staff attorney)은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법률구조 전담변호사가 구조기관을 방문한 국민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반면 개업변호사 시스템(Judicare system)은 의뢰인이 법률구조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가까운 일반 변호사를 찾아가 법률조력을 받으면 국가가 변호사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제도다.
정종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6일 "우리나라의 현행 법률구조제도는 법률서비스를 폭넓게 전달하기 어려우므로 개업변호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법률구조분야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서울 호텔에서 '국민의 법률복지 증진을 위한 법률구조제도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황선태) 창립 2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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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 황선태)은 창립 25주년을 맞아 지난 6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서울 호텔에서 '국민의 법률복지 증진을 위한 법률구조제도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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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법률구조기관의 소속 변호사 등이 기관을 방문한 이용자를 상대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전담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이 어렵고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법률구조기관 내로 한정된다"며 "영국·일본처럼 주로 개업변호사가 법률구조서비스를 제공하고 전담 변호사가 보충하면 국민의 서비스 접근성 및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가 제안한 방식은 법률구조공단 등 구조기관이 매년 개업변호사들로부터 법률구조활동 지원신청을 받아 '법률구조위원' 등으로 위촉하고, 신청한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소에서 상담한 사건 중 법률구조가 필요한 경우 공단으로 안내하거나 자신이 직접 법률구조를 수행하는 형태다. 그는 "개업변호사가 공단에 법률구조 수행 적격성에 대한 심사를 신청해 공단으로부터 소송실비를 지급받고 자신이 직접 법률구조사무를 수행한 뒤 사건이 종결되면 보수를 지급받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법률구조를 수행한 변호사에게 변호사법상의 공익활동으로 인정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이런 시도가 로스쿨제도의 시행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변호사들을 법률구조 체계내에 흡수해 법률구조 서비스의 제공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활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온 신주영 변호사(좋은합동법률사무소)도 "대한변협 회칙상 소송구조활동을 공익활동으로 명확히 규정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변호사들을 소송구조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며 "이는 소송구조 대상자의 폭넓은 변호사 선택권 보장으로 이어져 종국적으로 개업변호사 시스템을 저렴한 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노정연 법무부 인권구조과장은 "영국과 일본은 애초에 개업변호사가 수천 명 이상에 달해 법률구조제도 자체가 개업변호사 시스템으로 운영된 특수성이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전담변호사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다"며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개업변호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민사소송구조나 형사국선변호 등 법원을 통한 법률구조체계와 중복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 교수는 "의료복지시스템에 버금가는 법률구조시스템을 갖추고 대상자들에 대한 폭넓게 지원하기 위해서는 법률구조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며 "공단도 정부의 재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구조대상자들의 경제적 자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변호사보수를 산정해 상환받고 법률구조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법률구조 예산은 297억여원으로 영국의 1.1%, 독일의 9.2%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날 행사에는 황선태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권재진 법무부장관, 카지타니 고 일본사법지원센터 이사장,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등 33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