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역으로 진출하여 법률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며 궁극적으로 변호사들이 추구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와 같이 국내 법률시장이 한정적인 상황에서는, 법률시장의 개척이란 결국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임이 사실이다. 그리고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논하고자 한다면, 많이 예로 들어지는 곳은 동남아와 중국인 것으로 보이고 그 다음이 아마도 일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법률시장의 개척이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는, 결국 법률가의 외국어 실력이 시장 개척의 관건이 된다.
2. 외국어 공부에 있어 가장 유리한 언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로의 우리 법률가들의 진출은 이미 이루어져 왔고, 중국에도 여러 로펌들이 진출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에서 법률 비즈니스는 결국 영어로 행해질 수밖에 없고 중국에서의 법률자문도 상당부분 중국어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은 반드시 법률가의 외국어 실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법률가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법학실력 이외에 상당한 외국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법률가가 되기 전에 이미 외국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이 아닌 이상, 결국 법률업무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적 한계에서 한국 법률가에게 가장 익히기 쉽고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언어가 바로 일본어이다.
일본어가 한국어와 가장 가깝고 유사한 언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일본어를 오랜 동안 공부해 온 필자로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두 언어의 유사함과 연관성에 놀라게 된다. 요즘의 젊은 세대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 언어의 대부분은 한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주로 하는 일본어와 매우 호환성이 높다. 한자를 잘 읽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법전을, 일본인들은 의외로 쉽게 이해하는 모습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 맞물려 중국어 공부가 열풍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열풍이 다소 가라앉은 상황인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기업들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을 채용하는 경우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중국어를 네이티브로 하면서도 한국어를 잘 하는 한국계 중국인(이른바 ‘조선족’) 엘리트들이 워낙 많은 현실이 있는데, 이것은 재일교포들이 2세대 이후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매우 대비되는 것이다. 즉, 그 어렵다는 중국어를 매우 열심히 하더라도 한국계 중국인 법률가보다 중국어를 잘 하기는 불가능한 반면, 한국어를 잘 하는 재일교포 출신 법률가들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 법률가에 있어 일본어의 효용
일단 쉬운 일본어라도 배우게 되면, 일본 여행이 편하고 재미있어진다. 필자처럼 일본의 맛집을 검색해서 직접 찾아가는 재미도 누릴 수 있고, 일본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상품들을 좀 더 다양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법률가에 있어서 일본어의 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독일과 프랑스 등의 대륙법을 받아들였고 그와 관련한 방대한 문헌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출판해 왔다. 따라서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더라도, 일본어를 익히게 되면 일본 문헌을 통해 독일과 프랑스 등의 대륙법 관련 다양한 문헌을 간접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법률가에 있어 일본어의 가장 큰 효용은 바로 주요이슈에 대한 일본 판결례의 검색이며, 특히 우리 법원이 아직 판시하지 않은 이슈에 대한 일본 판결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참고사항이다. 일본의 법제 자체가 우리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주요 이슈에 대한 일본 판결례 또한 우리의 판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수행 중인 소송의 성패를 좌우하는 쟁점에 대해 아직 우리 판례가 나오지 않아 논란이 분분한 때에는 일본 판결례의 존재 자체가 사실상 승소에 다가가는 첩경일 수도 있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전과 함께 법률시장은 나날이 국제화되고 가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한국에 주재하는 일본인이 사건을 의뢰하러 올 지 알 수 없고, 일본에서 승소한 재일교포가 그 판결을 한국에서 집행하기 위해 전화를 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재판을 외국어로 하나”라는 식의 구시대적인 발상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많은 법률가 분들께 일본어를 공부해 보실 것을 추천하는 바이며, 협회 차원에서도 변호사들의 해외시장 진출 및 업무능력 확대를 위해 일본어 학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야후 재팬 사이트에는 엄청난 양의 유용한 정보가 법률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허중혁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