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 학부모모임에서는 자녀의 성적이 부모의 서열이 된다고 하는데, 의뢰인의 레벨은 곧 변호사의 레벨로 간주되기도 한다. 기업 고객으로부터 얻은 투자정보로 큰 돈을 벌거나 정부 고객에게 추천을 받아 힘 있는 위원회의 위원으로 발탁된 변호사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법조 새내기 시절 어느 자리에서 포부를 밝히는 순서가 있었다.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는 “큰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어서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말했고, 대형로펌에 들어간 친구는 “전문성을 쌓고 싶다”고 밝혔다. 뭔가 다른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낀 나는 “작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힘든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씨가 되었을까. 나의 고객 중에는 ‘도둑’이 많았다. 도둑질은 공공에 유해하므로 헌법이 자유를 보장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분들은 계속, 생계수단으로 하고 있었기에 실제로는 업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건이 끝날 무렵이면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일까. 그 일을 하기 전에 ‘미리’ 나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고객들은 나에게 도둑맞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열심이었다.
연립주택에 살 때 도난방지대책 수립을 위한 반상회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재물이 아까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을 해칠까봐 무서워서 그렇다”며 도둑들을 그저 두려워했고, 보안업체·CCTV설치 등 담장을 높이자고 입을 모았다. 답답했던 나는 “그분들은 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지 사람을 해치려는 게 아니며, 오히려 우리를 무서워한다. 폐쇄적이고 보안이 심할수록 안에 재물이 많아 보여 표적이 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많은 도둑님들을 고객으로 만났고 더러는 친하게 지냈다. 내가 그분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밤중 집이 아닌, 낮에 사무실과 접견실에서 만났기 때문이리라. 내가 알고, 사랑하는 도둑님들은 어릴 때 부모와 헤어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맞고 자랐으며 의무교육조차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잘 먹고 잘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내 집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