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직 후 일상에 적응해 나가면서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에 대한 동지애가 깊어져간다. 서너 시간이나마 깨지 않고 잠을 자던 때가 언제였는지 아련하고, 하루 종일 손목이 시큰하다. 아마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있을 텐데 존경의 마음으로 건투를 빈다.
전례 없던 무서운 더위가 꺾이고 가을의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지는 요즘, 피로에 더해진 우울함을 덜고자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지만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면 금세 단념하게 된다. 눈을 딱 감고 아이의 두 돌은 지나야 이른바 ‘육아 헬(Hell)’이 끝난다는데 재판과 상담, 서면에 치어 아이의 성장의 작은 순간도 놓치기 십상인 워킹맘, 워킹대디들에게 2년이란 그저 금싸라기 같은 순간들일 뿐이다.
법조인들의 육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이처럼 고단하다. 육아휴직 및 경력유지·관리의 측면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보내기도 녹록지 못하다. 지난해 법무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지검·청 65개 중 직장 어린이집은 7곳에 불과했다. 법원도 법원·지원 91곳 중 14곳뿐이었다. 변호사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서울에는 중앙에만 어린이집이 있다. 얼마 전 대한변협이 “변호사들을 위해 출산·육아휴직 측면지원 나섰다”는 고무적인 보도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정면지원’으로 일·가정 양립을 도와줬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신문에 “누가 나를 남쪽으로 실어다 주지 않겠나”라고 광고를 했더니 이를 본 한 선장이 그를 남국의 어느 곳으로 데려다줬다고 한다. 이러한 막연한 낭만을 기대해보고 싶은 가을이지만 나는 그저 육아정책들을 아쉬워하며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초보 워킹맘이다. 오늘도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선해 퇴근길을 재촉하고 비몽사몽 속에서 보채는 아이를 달래면서 매일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혹한이 예상되는 올해는 어느 해보다 가을이 짧을 듯하다. 가을의 건강한 기운이 워킹맘, 워킹대디들을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아쉬운 현실에 대한 푸념은 잠시 뒤로 하고 생애 첫 가을을 맞는 아이의 단풍잎 같은 손을 꼭 쥐고 남녘의 바다를 보러가는 용기를 다시금 내봐야겠다.
장희진 변호사 (지음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