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경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가 항소심의 사후심화를 제시하였고 올해에도 항소심을 사후심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 반면, 많은 변호사들은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보면, 항소심의 사후심화 여부는 오래된 줄다리기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항소심은 1심에서 수집한 소송자료를 기초로 심리를 속행하되 새로운 주장과 증거를 함께 고려하여 1심 판결의 당부를 재심사하는 방식(속심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은 1심에서 제출된 소송자료만을 기초로 1심 판결의 당부 등에 한정하여 심리하는 방식(사후심제)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항소심까지 언제든지 새로운 주장과 증거를 제출할 기회가 있다면 당사자나 변호사는 1심에서 분쟁의 종국적 해결을 가지고 올 만큼 충실한 주장 및 입증을 다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심급의 형해화와 불필요한 소송지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심 법원에서 주장과 입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당사자나 변호사가 ‘1심 법원만으로는 사실심의 충실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항소심의 사후심적 운영을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사자가 법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변호사 또는 판사가 재판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가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변호사가 성실히 소송을 수행하지만 재판진행에 따라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가 제출될 필요가 있을 경우도 있다. 변호사를 선임해도 본인이 초기 재판단계에서 법률이나 재판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여 변호사에게 설명하여야 할 사실이나 증거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강제주의가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1심에서 제출된 소송자료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면 본인소송의 당사자에게는 더 가혹할 수 있다.
또 단독사건의 경우 1심에서 1명, 항소심에서 3명, 합의사건의 경우 1심에서 3명, 항소심에서 3명의 법관이 심리를 하게 되는데, 1명보다는 4명(단독), 3명보다는 6명(합의)의 경력 법관이 다양한 관점에서 충실한 심리를 해준다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간절한 마음이기도 하다. 즉 실체적 진실 발견과 구체적 타당성의 실현을 위해 1심의 충실화뿐만 아니라 항소심의 충실화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학 당시 ‘우리나라 법원은 1심뿐 아니라 항소심에서도 새로운 주장과 증거 제출을 허용하고 법관은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설명을 하였더니 우리 사법제도에 대해 신기해하면서 부러워하던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소율이 높다고는 하나, 이는 오히려 국민의 법원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항소심의 바람직한 운영은 난제 중의 난제이다. 하지만 속심과 사후심의 장점을 절묘하게 절충한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사자와 늘 대면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인생이 걸린 재판의 당사자에게 실체적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이라도 더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판사님도 본인이나 가족이 당사자로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러한 당사자의 간절함을 이해해주신다면 참으로 좋겠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