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법대에 앉으신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이 말 아닐까. ‘한 말씀’의 주제와 길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끊자니 마음 상할 것 같고 계속 듣자니 내가 지친다. 내가 궁금한 ‘요건사실’은 안 알려주고, 왜 이렇게 못 알아들을 말씀만 계속 하실까. 그가 직접 쓴 서면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첫 문장을 읽기도 전에 엄청난 분량과 특유의 편집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피곤과 졸음이 몰려오지만 쉴 수가 없다. 그가 중간중간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당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제 몇 시간 들었다고 내가 알 리 없다.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말해 보지만 “변호사님은 절대 이해 못 하실 거예요”라고 확인해준다. 그 다음으로 법률문제다. 특정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는 다르겠지만,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건들을 맡는 나로서는 고객이 물어보는 법리를 대부분 모른다. 그는 “변호사가 왜 법을 이렇게 모르냐?”고 한 마디 하면서도, 이번에는 무슨 법 몇 조에 어떤 내용이 있고, 최근에 어떤 판결이 있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무튼 나는 두 과목 모두 과락을 받았다.
이제 내가 반격할 차례다. “선생님이 하신 행동도 정당하고 법도 그렇게 잘 아시는데 왜 기관에서는 인정을 못 받으셨어요? 그리고 저는 어차피 아무 것도 모르는데 왜 저에게 계속 말씀하시나요?” 그는 사회의 부정부패와 본인의 의로움으로 분노했지만, 수천 년간 있어왔던 인간사회의 죄악과 부조리를 해결할 능력이 본인 앞에 앉은 변호사에게는 없다는 차가운 진실에 말문이 막히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마음에는 상처가 너무 많았다.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조차 듣기 힘든 이야기가 하루에도 수백 명이 호소하는 법정에서 잘 들릴까. 아파서 쓴 글은 사랑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그의 행동과 생각은 옳았지만, 말과 글은 가시가 많아서 소화하기 어려웠다. 알밤이 들어 있는 밤송이처럼. 변호사는 의뢰인의 가시에 찔리고 피 흘리면서 피해의식과 상처를 걷어내는 사람이다. 긴 시간 듣고 읽었더니, 짧은 글과 몇 마디 말이 남았다.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