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구속과 관련하여 자신의 페이스 북을 통하여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권력의 의지와 여론의 압력으로 집요하게 파고 또 파서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무서운 세상을 본 충격'으로 먼저 다가왔다"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 변호사가 말한 ‘무서운 세상’이 어떤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 단순히 폭력과 공포가 일상화된 그러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가로서 법률적 의미를 담았으리라는 나름의 추측에 이래 저래 헌법적 이념과 가치를 생각해 보았다. 헌법 제12조 1항 후문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적법절차의 원리, ‘due process of law’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due process of law’에서 ‘due’가 없으면 ‘무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due process of law’는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 등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기본원리로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원리이다. ‘due process of law’는 형식적 합법성이 아니라 실질적 합법성을 지향하며, 모든 국가작용이 법이 정한 정당하고 적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며, 국가작용의 구체적 실현과정에 있어서도 그 모습이 정당하고 적정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원리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의 재판이나 수사절차에서 법관이나 검사, 경찰 그리고 변호사가 이 원칙을 생각하거나 고민하면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로펌이나 변호사 사무실을 수색하여 의뢰인과 변호인 간에 주고 받은 정보를 압수하는 것, 원하는 진술을 얻기 위하여 피조사자에 대하여 구속을 암시하는 것, 참고인 신분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추는 것, 임의제출 형식으로 휴대폰이나 자료를 제출받는 것, 조서 작성시 작성자의 주관적 의사를 개입하여 피조사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문구를 기재하는 것, 별건수사를 통한 심리적 압박, 불충분한 심리를 통한 구속기간 준수, 예단에 기초한 소송지휘, 여론과 법원칙을 혼동한 수사와 재판. 이들 모두 법률에 근거하여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맞으리라. 그렇다고 due process of law에 맞는 것인가?
입법과 행정, 사법의 모든 영역에서 되짚어 보자. 법적 절차(process of law)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는 작용들이 적정한 법의 절차(due process of law)에 맞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due process of law에서 중점은 ‘process of law’가 아니라 ‘due’에 있다. 형식적인 법 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굳이 due를 붙일 이유가 없다. 지금 세상에서 ‘due’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러기에 ‘무서운 세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800여 년 전 Magna Carta에서 유래한 ‘due process of law’의 의미를 오늘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