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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우리의 형사법 절차
박선기 재판관 (유엔국제형사재판소(UNIRMCT))
2019-06-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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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The Right to a Fair Trial)는 법치민주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가장 핵심적 인권보장 원칙이다. 자유민주주의사회는 국가의 공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이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자국의 헌법과 법률에 구체화하여 이를 반영하는 형사법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공정한 재판을 위한 노력은 수사와 재판의 각 단계에서 일관되게 강조된다. 조사·수사 단계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사 원칙을 세우고 따르는 것, 재판 단계에서는 검찰과 피고인이 동등하고 대등한 공소 유지와 변호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재판의 전체 과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해 주기 위해 엄격한 절차를 규정하고 적용한다. 특히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며, 엄격한 증명에 의해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견지한다.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담보하는 핵심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검찰권은 막강한 수사 권한과 첨단 수사기법으로 강화되어 있다. 또 광범위한 수사권과 독점기소권을 행사한다. 이렇듯 강력한 검찰권에 맞서야 하는 피의자나 피고인으로서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가 간절하다. 동시에 불공정에 대한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기울지 않은 운동장’에서 대등한 수단을 가지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의 현행 형사법절차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개인의 기본권을 잘 보장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수사 주체의 기본 책무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사이다.

수사 주체가 피의 사실에 접근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평무사한 시각으로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수사의 원칙이기 이전에 수사 주체의 기본 책무이다. 검사가 특정 사건에 비합리적으로 집착하거나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에 사로잡혀 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검사를 정의 구현의 책무를 띤 독립적 기관으로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나 피해자를 대변해서는 안되고, 오로지 공공을 대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정파적, 부당한, 정치적, 개인적 고려 등에 근거한 수사를 배격한다. 특히 인종, 종족, 종교, 정치적 신념, 사회적·경제적 계층에 근거한 수사를 해서는 안됨을 명시하고 있다(미국변호사협회 ABA Standards on Prosecutorial Investigations, Standard 1.2, d ii).

국제형사재판소(ICC)나 유럽국가들도 수사 주체의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 원칙을 강조한다. 즉 검사는 수사 중 무죄추정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ICC Code of Conduct for the Prosecutor, Section 6, Impartiality, i. ). 또한 검사는 수사기관의 중립성에 근거하여, 피의자에게 불리한 사실과 함께,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이나 증거도 동시에 수사할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Rome Statute of ICC, Article 54, 1 (a)}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는 ‘공정한 재판’을 훼손하는 위법행위이다.

수사 주체가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유·무죄에 관하여 언급하거나, 수사대상의 평판에 관한 공개적 언급이나 자료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 알리바이, 자백, 인정 사실 등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나 향후 증인에 관한 평판이나 성품에 관해서도 공표해서는 안 된다. 수사 사안에 대하여 범인 색출이나 범죄 해결에 필요한 극히 예외적 허용이 있다 하더라도 각별히 신중하게 유의해야 한다.

기소 이전의 피의사실 공표는 재판의 공정성을 보이게 안 보이게 망가뜨릴 수 있다. 이는 피의자의 명예를 훼손함은 물론, 향후 재판에서 피고인의 재판에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형성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데로 이어지는 것이다. 유럽이나 영미 그리고 유엔국제형사재판소{(IRMCT: International Residual Mechanism for Criminal Tribunals,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의 잔여 업무 통합 재판소}는 이러한 수사 주체의 유,무죄에 영향을 끼치는 피의자나 참고인들의 진술내용을 포함한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수사 중에는 물론이고 재판 중에도 금한다. 법정 외에서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발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검사 등을 징계 및 형사처벌하고 있다.{ICTY Standards of Professional Conduct for Prosecution Counsel, 2(k), ICC Code of Conduct Section 8(b) Public expression, 미국ABA Standards 1.5- Contacts with the public during the investigative process}

요컨대 검찰이나 수사기관이 법정이 아닌 곳에서 피의사실 등을 공표하거나, 제3자에 알리는 것은 범법행위이다. 이는 검찰이 재판정에서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 진실을 입증할 책무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엄격히 규제되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자료제공 의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이다.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모든 유리한 자료, 그리고 해당 사건과 관련된 검찰 증인들의 모든 진술서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검찰의 자료 제공 의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이다. 대륙법계의 유럽국가들에서는  모든 수사 자료가 기소 후에는 피고인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열람·복사하여 재판에서 검찰의 증거나 증인을 탄핵하는 데에 사용된다.{유럽인권법원(ECHR) 판결 (Beraru v. Romania §§ 70, Luboch v. Poland §§ 64), Prosecution disclosure obligation, Vladimir Tochilovsky)}
  
영미법계나 유엔국제형사재판소 등에서 적용하는 검찰의 자료제공 의무의 주요 내용도 마찬가지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키는 데 기여하도록 되어 있다. 즉, 검찰이 알고 있는 피고인의 무죄에 관한 자료, 피고인의 죄를 경감하는 자료, 검찰 측 증인및 증거의 신뢰성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자료를 재판 전은 물론 재판 중과 후에도 피고인에게 계속해서 제공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IRMCT Rule 73(A) Disclosure of Exculpatory Evidence, ICTY and ICTR Rule 68, Brady Rule Brady v. Maryland, 878 U.S. 83 ,1963.}

구체적으로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자료, 검찰 측 증인들의 사건에 대한 모든 진술서와 검찰 측이 증거로 사용할 예정인 기타 증거물들, 피고인에게 유리한 모든 자료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피고인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왜 검찰의 자료 제공 의무가 강조되는가. 피고인 측이 검찰 측 증인과 증거를 다투어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기 위함이다. 이는 모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IRMCT Rule 71 Disclosure by the Prosecution A(i) (ii), ICTY and ICTR Rule 66, 미국의 U.S. Federal Rules of Criminal Procedure 16 (a)}

나아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중요한 자료를 검찰이 보유하고 있다고 구체적 의심이 되는 경우, 검찰 자료를 직접 피고인 측에서 검사할 수도 있도록 하여{IRMCT Rule 71 (B) , ICTY and ICTR Rule 66B} 기울지 않은 운동장에서 동등한 수단을 가지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를 고의적으로 위반한 검사는 형사처벌이나 징계 처분될 수 있고 해당 증거는 배제되거나 혐의가 기각될 수 있다.

요컨대, 공정한 재판의 핵심은 검찰과 피고인의 동등한 ‘다툼 수단인 무기’의 보유에 있다. 이 원칙을 보장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수집한 피고인에게 유리한 모든 자료를 피고인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칙에서 검찰이 보유하는 검찰측 증인의 신뢰성이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자료들을 반드시 피고인에게 제공해야 한다. 검찰과 동등한 무기를 가지고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추상적 구호로 머물지 않고, 비로소 현실적 보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법무장관, 미연방대법원 대법관을 역임하였던 Robert Jackson의 “검사가 최선을 다할 때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익한 힘이 되지만, 검사가 악의나 다른 동기로 행동할 때는 우리 사회에 최악의 하나가 된다”는 경고는 검찰권 행사의 공평성, 중립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형사법 체계의 발전과 진보를 위한 성숙한 성찰이 이제라도 필요하다. 우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상술한 검찰의 자료제공 의무가 명문화되어야 한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와 검찰 측 증인에게 불리한 자료’를 포함하여, 방어권 행사에 긴요한 모든 수사 및 관련자료를 검찰이 피고인에게 제공할 의무가 부과되어야 한다. 이 의무가 명시되지 않은 우리 형사법체계는 조속한 정비를 요한다.

수사기관과 검찰의 중립성 강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검찰의 공소유지를 유리하게 하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것에 대한 혁신적 성찰이 필요하다.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등의 공표에 대해 상세히 규율하는 내부 절차를 조속히 제정·시행하여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여야 한다.

 

 

박선기 재판관 (유엔국제형사재판소(UNIRM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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