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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소비자·투자자’의 마음과 ‘시민’의 마음이 공존해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소비자·투자자’로서 우리는 더욱 예민해졌지만, ‘시민’으로서 우리는 점점 무뎌져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수퍼자본주의’ 시대, 확산되는 불평등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 규칙을 다시 쓸 필요가 있어
법률가들은 경제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불평등의 정치경제학. 미국의 전 노동부장관이자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 교수의 강좌명이다. 첫 번째 시간, 라이시 교수는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 “노동자들이 적정한 임금을 받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는 문장 하나를 제시하였다. 이에 동의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보라고 하자,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다음 슬라이드에서는 “평소 물건을 구매할 때 온라인(아마존)에서 최저가 상품을 검색하여 구매한다.”는 문장을 보여주었다. 이 문장에도 동의하는지 묻자, 역시 대다수의 학생들은 손을 들었다.
소비자·투자자의 관점, 시민의 관점
우리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소비자·투자자’의 마음과 ‘시민’의 마음이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상품을 원하고, 투자자로서 좀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줄 기업을 찾는다. 그런데 소비자와 투자자로부터 압력을 받는 CEO가 가장 쉽게 택하는 경영 전략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것은 ‘악덕 기업인’이 아닌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우리 자신인 셈이다. 반면,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좋은 거래’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결과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높이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당에 투표를 한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소비자·투자자’로서 우리는 더욱 예민해졌다. 우리는 국내외 쇼핑 사이트에서 다양한 상품을 비교한 후, 배송료가 1000원이라도 싼 제품을 구매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코스피와 미국 증시를 오가며 기민하게 투자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투자를 할 때 그 기업이 직원들에게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지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 기업이 직원들을 정리해고하든, 기계로 대체하든, 또는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든, 해외에서 환경을 오염하거나 현지인의 인권을 침해하든 개의치 않고 나에게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거래를 택한다. 반면, 시민과 공동체의 가치를 조직화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무뎌졌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투자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는 비교적 잘 대변되지만,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단체들이 가진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퍼자본주의 시대, 어떻게 경제 규칙을 짤 것인가
이처럼 우리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수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 시대에 살고 있다. 수퍼자본주의는 불평등을 낳고 있다. 노동자들의 처우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지만, 투자자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킨 CEO에게 지급되는 대가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의 경우, 1965년 대기업 CEO의 보수는 일반 노동자 임금의 20배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300배에 달한다. 그 무렵 전체 인구의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은 미국인 전체 소득의 9~10%였으나 현재는 20% 이상이다.
지금의 불평등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특별히 탐욕스럽거나 비인간적이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한다. 경영자들은 단지 소비자들에게 좋은 거래를 제공하고, 그로써 투자자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구성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이 과도하게 심화되고 있다면, 혹시 게임의 룰 자체가 불공정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시장의 룰을 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몫이다. 그런데 개인(소비자·투자자)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시민)으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목표를 논의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보다 공정한 경제 규칙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주춤하는 사이, 수퍼자본주의는 시장의 욕망에 충실한 방향으로 경제 규칙을 조금씩 바꿔 왔다.
혹자는 국가가 ‘자유 시장’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라이시 교수는 ‘자유 시장’이란 개념은 허구라고 말한다. 본래 시장이란 국가가 정한 룰에 따라 운영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국가는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을 정하고(예: 인신매매의 위법성), 재산권의 보호 범위를 설정하며(예: 특허권의 기간), 시장지배력의 한계 등을 정한다(예: 독과점의 규제). 따라서 누군가가 ‘자유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국가가 정한 시장의 규칙을 변경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라이시 교수는 경제 규칙을 정하는 배후의 힘(권력)을 항상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세대 법률가의 역할, 그리고 경험적 연구
그렇게 라이시 교수님께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었다. 수퍼자본주의와 불평등을 공부할수록 경제 규칙을 다시 쓰는 작업은 대단히 무겁고 어려운 과제라는 좌절감만 들었다. 뭔가 답답한 마음에, 올해 초 경제학자로서 사회안전망을 전공하는 호인스(H. Hoynes)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 갔다. 그녀에게 내가 한국의 변호사라고 밝힌 후, 불평등과 (재)분배 정책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대뜸 웃으며 “법률가들은 경험적 연구(empirical study)에 관심이 없지 않나요?”하고 되물었다.
법률가들도 불평등과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만, 정작 우리 사회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불평등한지에 관한 통계 자료를 들여다보고,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며,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개별적 대안들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검증하는 데는 소홀한 듯하다. 현실에 대한 정량적 분석(quantitative analysis) 없이, 법률 또는 법 원칙에 근거한 당위적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이해하고 바꾸어야 할 대상은 법조문 자체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경험적 사실들이다.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사회적 과제 중 하나는 수퍼자본주의의 경제 규칙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닐까. 중장기적으로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둔다면, 한반도 전체적으로 모든 경제 주체가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되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우리가 경제학자들보다 세상을 읽는 힘이 부족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시장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 이 글에서 인용한 라이시 교수의 견해는 그의 저서 “수퍼자본주의”(Supercapitalism) 및 “자본주의를 구하라”(Saving Capitalism)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