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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6> 공공의 리더십 <끝>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2020-12-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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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개혁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

이 과정에서 부정·도피·비난·냉소라는 네 가지 장애물에 부딪히기 마련
리더는 사람들이 ‘과업 회피증’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변화로 향하는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


공공정책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몇 편의 짧은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그 중 리더십 에세이가 있다. “리더십을 발휘하여 공공선(public good)의 확대에 기여하였던 경험을 기재하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2년 전 이맘때 즈음,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몇 주 동안 멈춰서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공익 사건으로 분류된 일을 나름 수행하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 질문에 대하여 쓸 말이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그 이전보다 ‘공공선’이 확대되었다고 볼 만한 사건이 있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그 사건의 결과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만든 것이었을까. 기한에 쫓겨 에세이를 제출하였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돌아올 때에는 꼭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자’고 다짐하면서 유학길에 올랐다.


리더십 연습 -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기

공공정책대학원에는 리더십 계열의 수업이 상당히 많다. 나는 몇 과목을 수강하였다. 교수님들은 사전에 리더십 이론에 관한 글을 많이 나눠주었는데, 막상 수업 시간에는 이론을 가르치지 않고 학생들끼리 토론만 하게 하였다. 그리고 리더십에 대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유도하였다. 남들 앞에서 진솔하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때 화자의 말에 힘이 실렸고, 사람들은 더 깊게 몰입하며 공감하였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는 사람에게는 청중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로버트 라이시(R. Reich) 교수님이 종강을 앞두고 약 십여 분 동안 짧게 해 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사회로 복귀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리더십’을 이야기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본인이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리더십에 대한 생각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래서 더욱 그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그는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고, 타임지(The Times)는 그를 20세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10대 장관으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리더가 말하는 리더십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회 변화의 네 가지 장애물 - 부정하기·도피하기·비난하기·냉소하기

먼저 그는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하면서, 그 때마다 항상 부딪히게 되는 네 가지 장애물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첫째는 ‘부정하기’(denial)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어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그런 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OECD가 2017년 발표한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세계 주요국 중 5위 수준이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나라에 빈곤층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지구 온난화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아직도 기후 변화를 부정한다.

둘째는 ‘도피하기’(escapism)이다. 일부는 현실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무시하려고 한다. 나 자신이나 가족과는 상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자를 도우면 혹여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 봐 외면한다. 빈곤이나 사회 복지는 국가가 나서 해결할 문제이지 내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대기근은 시리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2020년 대한민국에서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셋째는 ‘비난하기’(scapegoating)이다. 일부는 현실의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다가, 갑자기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당사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한다. 미투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평소부터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국민들이 낸 세금에만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기후 위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대안도 없이 비싼 대체에너지만을 고집하면서 우리나라의 산과 들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으려 하고 있다.

넷째는 ‘냉소하기’(cynicism)이다. 일부는 현실의 문제를 알고 있고, 이를 외면하거나 당사자를 비난하지도 않지만, 현실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네가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 세상을 바꿔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좌절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수구 세력은 너무 강하고, 정치란 원래 부패하기 마련이니, 네가 나서 봤자 너와 네 가족만 힘들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라이시 교수는 네 번째 장애물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공의 리더십 - ‘과업 회피증’(work avoidance)을 극복하는 것

처음 사회 문제를 발견하였을 때 사람들은 의지를 갖고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위의 부정하기, 도피하기, 비난하기, 냉소하기란 네 가지 장애물에 부딪히면서 점점 ‘과업 회피증’(work avoidance)에 빠지고 만다. 해야 할 과업이 있지만, 무력감에 자꾸 이를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라이시 교수는 리더십이란 사회를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과업 회피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회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맞서며, 당사자들과 연대하면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주변을 이끄는 사람이 바로 리더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하였을 때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여러분들이 사회의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 개혁은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으므로 순간순간을 즐기라고 하였다. 2017년 제작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보면 그가 마지막에 장난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꽤 인상적이다. 70대의 노교수(老敎授)는 오늘도 글을 쓰고, 영상(Inequality Media)을 제작하면서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과업 회피증’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회 변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배 분들이 계시다.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위의 네 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리더들이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그리고 나의 회사는, 우리 사회에서 공공선을 확대하는 일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역량과 용기와 인내가 부족하여 의미 있는 일들을 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무엇보다, 최소한 어떤 사회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거나, 비난하거나, 냉소하는 편에는 서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연재를 마친다.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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