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업무를 수행하다보면, "답이 없네"라고 스스로 되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각해보면, '답이 없다'라는 말은 대개 2가지 의미로 대부분 나타나는 것 같고, 필자는 이 두 개를 교차로 사용하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지상군으로는 답이 없죠. 캐리어로 가야합니다"와 같이 무엇을 하여도 못 구제할 만큼 상황이 어렵다(萬事休矣)와 같은 상황을 묘사함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식 시험에서 '위의 것 중 맞는 것은? 보기 (3)번: 정답없음'와 같이 선택지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나타내는 것 같다.
변호사업무를 시작하던 시점에서는 주로 두 번째 경우의 "답을 찾아봐도 답이 없네(혹은 답을 모르겠네)"를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첫 번째 "답이 없네"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빈번해졌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마도 사내변호사로서 생긴 특성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 생각에 사내변호사가 외부로펌 변호사와 가장 큰 차이점은 사내변호사는 클라이언트가 1명(1개 회사)이고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회의나 모임 등을 통해 회사의 좀 더 깊은 속사정을 인지하면서 회사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빈번하여, 회사와 그 구성원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적으로 외부로펌보다 높다는(혹은 높아야만 한다)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답을 스스로 제한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법률에 적혀 있는 그대로를 평면적으로 적용하여 의견을 현업부서에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최근에는 필자의 의견이 회사의 예산에 비추어 가능한 의견인지, 시기와 방법이 적절한지, OPEX에 영향은 없는지, 이연상각은 되는지, 회사의 risk appetite에 적절한지 등등 비법률적 요소도 한 번 더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법률적 답은 있음에도 '답이 없네…'라고 스스로 고민하는 경우가 예전보다 더 많아 진 것 같다. 오늘도 업무 중에 "답이 없네"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이 말이 첫번째의 경우인지, 두번째의 경우인지 고민하고 있다.
정웅섭 변호사 (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