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은 좁고 굳세지 못해 이해가 닥치면 흔들림을 면치 못했다. 재상의 그릇이 부족한 인물이다.", "류성룡은 나라걱정을 집안 일처럼 했다.", "윤두수는 염치를 모르는 비루한 사내이다.", "사신이 허위로 날조해서 모함하느라 급급했다.", "정철은 편협되고 망령되어 원망을 자초했다. 죽을 때까지 비방이 그치지 않았다.", "정승 노릇을 1년 남짓했고 이산해, 류성룡 등 다른 정승들도 있는데 어떻게 권세를 부린단 말인가.", "이이첨은 천성이 영특하고 기개가 있으며 간쟁하는 풍도가 있었다.", "이이첨은 간적의 괴수다. 실록을 쓸 때 스스로를 거리낌없이 칭찬했으니 통한스러울 뿐이다.", "기자현은 도량이 넓고 덕망이 있었다.", "기자현이 실록을 감수할 때 자기 입맛대로 스스로를 칭찬했으니 주벌(誅罰)을 가해도 모자라다."
동일한 사람을 두고 극명하게 평가를 달리하고 있다. 전자는 '선조실록', 후자는 '선조수정실록'의 내용이다. 광해군대에 편찬된 선조실록은 인조가 즉위한 이후 대북파인 기자현과 이이첨 등이 중심이 되어 편찬된 것으로서 무사(巫史), 곧 사실을 왜곡시킨 역사라고 하여 수정이 이루어진다. 곧 선조수정실록이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편찬 방법론과 관련하여, 사관 한 명이 책임지고 일관되게 찬술하자는 입장과 역사는 홀로 담당해서는 안 될 일이며 공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는데, 후자에 따라 편찬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주묵사(朱墨史)의 정신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 신종실록을 수정하면서 원문은 검은 글씨로, 뺄 것은 노란 글씨로, 새로 삽입하는 것은 붉은 글씨로 썼는데, 수정하는 대목의 역사를 붉은 글씨로 썼다고 하여 이를 주묵사(朱墨史)라고 했다. 선조수정실록의 편찬자들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수정실록을 편찬하였음에도 주묵사의 정신에 따라 기존의 실록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최근 역사왜곡방지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은 3·1운동과 4·19 민주화 운동, 일본제국주의의 폭력, 학살, 인권유린 및 이에 저항한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 일본제국주의를 찬양·고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위반 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진실한 역사를 위한 심리위원회'를 두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여부를 심리하도록 하고 있다. 입법의 취지가 이해된다 하더라도 역사를 법으로 규정짓겠다는 것이 온당할까?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몇몇 공소장은 공개가 거부되고, 공소장 기재 사실관계의 규명보다는 유출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는 것은 공론의 지지없이 역사를 규정지으려는 것은 아닐까? 역사라는 수레바퀴를 법이나, 권력이 그 뜻에 맞게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부단(不斷)한 대화"라고 했다. 선조실록 수정 시 주묵사의 정신은 그와 같은 대화를 단절시키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공론의 지지 아래 역사를 편찬하고자 했던, 기존의 실록을 없애고 새로이 역사를 규정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하지 않았던 그 때의 정신과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