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변호사는 회사에 몇 안 되는 여자 시니어 파트너 변호사이다. 분 단위로 쪼개서 사는 바쁜 일정이지만, 자녀들의 학교 성적 뿐만 아니라 봉사활동까지 직접 챙기면서 자녀 둘을 모두 명문대에 입학 시켰다.
B 변호사는 50대 미혼 여자 변호사다. 연봉이 몇억씩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월급 나오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또 다른 미혼 여자 변호사 친구와 함께 적금을 부어 매년 하계, 동계 두 번씩 보름 정도 스케줄을 빼서 해외로 여행을 간다.
C 변호사는 작년에 출산을 했다. 원래 작은 로펌에서 일하던 그녀는 임신과 출산 계획을 고려해 사내변호사 자리로 미리 직장을 옮겼고, 출산 후에는 휴직을 최대한 붙여 써서 몇 개월간 아이를 돌보다가 얼마 전에 회사로 복직을 했다.
D 변호사는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30대 후반 여자 변호사다. 한달 평균 250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도 고객 회식에 빠짐 없이 나가고, 어쩌다 쉬는 주말에는 서핑, 패러글라이딩 등 취미생활까지 알차게 하는 데다가 사교성까지 있어서 모든 파트너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
주변의 여자 변호사들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여자 변호사건 남자 변호사건 맘만 먹으면 원하는 것 다 이루며 살 수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버리는 건 조금 무책임하다. 엄마가 바쁘면 자식이 좋은 대학 못 간다, 아빠는 아이를 잘 못 돌보니까 엄마가 휴직을 해야 한다, 애 낳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결혼을 해야 한다, 여자가 결혼 안하고 애도 없으면 워커홀릭일거다, 여자들은 체력이 약해서 힘든 일은 못 버틴다 등등 여자들에게만 씌워지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변호사라고 이걸 피해 가지는 못하는 듯하다.
결국 고정관념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이 사회가 불어넣는 불안감과 죄책감일 것이다. 때 돼서 결혼 안하고 애 안 낳았다고 불안해 할 필요 없고, 바빠서 아이 숙제 못 봐줬다고 엄마 혼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글쎄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인생 잘 가꾸며 살 테지만, 그냥 변호사 노릇, 사람 노릇도 간신히 하는데 여자라서 더 힘들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