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한 해 13만2842건의 개명허가 신청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신청인지 가늠해보려고 2020년 우리나라 신생아 출생인원 27만5815명과 비교해본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한 평생 살면서 두 사람 중 한 명은 이름을 바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고 태어나지 않는다. 물론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나라에서 언제 태어날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일단 받아들이고 출발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이름이다. 비록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달리 부를 수 있겠지만, 공적으로 호적상 이름과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개명권을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을 이루는 자기결정권의 대상으로 적극 해석하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결정이 있었다. 그 이후 개명허가 신청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최근에는 범죄를 기도 또는 은폐하거나 법령에 따른 각종 제한을 회피하려는 의도나 목적이 개입되어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명허가 신청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인용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 뿐 아니라 현재 이름으로 너무 힘든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불운한 운명을 바꾸고 싶다는 개명허가 신청이유를 종종 접하게 된다. 건강, 경제, 결혼, 관계 등 여러 이유로 인생의 벽에 부닥친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노력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아 이름이라도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이다. 부르기 좋고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게다가 이름을 바꾸어 자신의 운명도 잘 풀린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인생이다. 한 사람의 이름이 바뀐다고 운명이 달라지기에는 개개인이 마주한 현실의 벽이 너무 공고하고 높은 것이 세상살이다. 개개인이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라 받아들였던 제도와 구조가 막막한 벽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 개명을 고민하지 않아도 살 만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