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한 기회에 울산지법 2019고합241 사건의 판결문을 읽게 되었다. 범죄사실만 읽었는데 이미 마음이 젖은 휴지조각 같다. 서른 즈음의 두 청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함께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자살방조죄로 기소된 사건. 판결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내가 얼마나 단절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나, 아니 세상의 대부분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나 깨닫게 된다.
이 청년들이 동반 자살을 모의하며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몇 주째 문진처럼 가슴 한 켠을 누른다. 자살계획의 실행을 앞두고 그들이 걱정한 것은 돈이었다. "아침에 돈을 좀 썼는데 어찌어찌 6만 원을 만들었어요, 돈 구하기 진짜 힘드네요, 더 구해 볼께요 - 힘들죠 -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미안해요. 멀리서 오시구. 차 준비해 주시구ㅠ -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급할 때 3만 원 구하기도 힘들더라구요. 참 쪽 팔리고 서럽더라구요ㅠ - 맞아요 ㅋㅋ" (판결문 제26쪽) 돈이 없으면 자살도 못 하는구나. 죽기 위해 돈 걱정하는 이들의 대화 속에, 허탈할 만큼 순수한 공감과 존중 같은 것이 있다.
단절은 얼마나 편리한가. 늘 어울리는 친구들과 만나고, 엇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고, 직업에 어울리는 취미 하나씩 만들고 살다 보면, 어쩌다 그 생활반경 밖의 삶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어쩔 줄을 모르겠으니 되도록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가난에도, 불행에도 관성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탈을 구르는 돌처럼. 구르는 돌이 스스로 멈추려면 바닥까지 가고도 더 가는 수 밖에 없으니, 결국 누군가는 다가가서 멈춰 줘야 하지 않을까.
김영광의 시가 생각났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 나라도 곁에 없으면 /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사랑의 발명,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전아영 변호사 (웡파트너십(WongPartnership L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