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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조인대관
법대에서
"아빠를 신고한 걸 후회합니다."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2021-09-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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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신고한 걸 후회한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심지어 자신을 범하였다는 피고인과 같이 살게 해달라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계속 외면당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재판하면서 느낀 바로는 학대범죄 피해 아동에 대한 '즉각 분리제'를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세심한 후속 조치가 뒤따르면 괜찮겠지만, 예산·인력의 뒷받침이 없다 보니 일단 '분리' 해놓고, 기약 없는 '방치'로 끝난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자백하는 경우라면 신속하게 심리해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그 이후 가족의 재결합 문제는 최대한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면 된다. 하지만 피고인이 무죄를 다투는 상황이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방어권 보장을 위한 충실한 심리는 포기할 수 없다. 피해 아동이 원한다고 무조건 재결합시킬 수도 없다. 자칫 회유나 진술 오염 시도가 있을 수 있고, 2차 가해나 재범도 염려된다. '신고했더니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험을 했던 아이들이 또 당해도 꾹 참고 사는 상황은, 정말 생각하기조차 싫다.

피해자가 최대한 빨리 법관의 면전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하고, 반대신문도 이뤄질 수 있게끔 증거보전절차를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로써 진술 오염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다. 섣부른 회유가 통하지 않게 법원조사관으로 하여금 수시로 피해자의 상태를 살피게 하고,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한 전제에서 '용서와 재결합'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인 게 분명하다면, 아동보호 절차에서도 그것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세심하고도 유연한 대처는 결국 예산과 인력 없이는 언감생심일 것이다.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그것만으로도 지옥 속에서 산다. 그 지옥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는데,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리와 방치'라는 또다른 지옥이라면 어떻겠는가. 앞으로도 법대에서 나는 "법에 호소한 것을 후회한다"는 가슴 아픈 소리를 듣고 또 들어야 할 것이다.


차기현 판사 (광주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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