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뜨거웠다. 이성윤 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에 대한 '표적 수사'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야당 후보 및 국회의원, 야당 출입 기자, 심지어 가족들까지 통신자료를 조회하고, 관련 보도를 한 일부 기자의 통화내역까지 확보했다. 공수처에 비판적인 학회 이사들과 조국 흑서 저자 등 일반인을 무분별하게 조회한 사실도 드러났다. 급기야 직권을 남용한 '민간인 사찰'이라는 말까지 들렸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의 장 등이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요청하는 경우 이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는 위 조항에 근거해 이용자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손쉽게 제공받았다. 그러나, 개인정보,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추가 정보를 알아내는 용도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법원의 허가라는 제약이 있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수사의 관련성 없이도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받아보는 관행은 과거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4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법 개정을 권고했고, 최근에도 송두환 위원장이 조회통지 등 절차를 보완한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사실을 지적하며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통신의 비밀이 보장되길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비단 공수처뿐 아니라, 모든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향후 적절성 유무를 통제, 감독할 수 있는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김진욱 공수처장은 검찰, 경찰의 조회 건수와 비교해 변명만 늘어놓을 뿐, 이번 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다지 없어 보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과거에도 수십만건씩 검경이 영장 없는 조회를 해왔는데, 공수처 수사 대상이 대검찰청과 언론인이 되니 사찰 논란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공수처에 인력과 예산을 대폭 보강해 수사능력을 갖추도록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수처의 과도한 통신조회를 문제삼는 마당에 추가 지원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도입한 공수처가 과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해놓고 '검경도 많이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면피를 하고, '검경에 비해 지원이 모자라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는 건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대처방안부터 마련하겠다고 하는 게 마땅했다. 설령 공수처장 주장대로 불법적인 '사찰'이 아니고 정상적인 '수사'였다면, 조회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고, 수사 관련성을 해명하는 게 기관의 장이 취할 도리다. 공수처의 무차별적 조회와 검찰의 선별적 조회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반론까지 나오는 마당이 아닌가.
작년 1월 21일 출범한 공수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정권비호를 위한 하수인'이라는 씻기 어려운 오명까지 얻고 있다. "인권 친화적 선진 수사기관으로 조속히 정착하겠다"던 공수처장의 다짐이 공허하게 느껴진 1년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 확대 필요성을 논의할 게 아니라, 당장 통신자료 조회 논란을 불식할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