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 쯤 한 세미나 뒷풀이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변호사님께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사망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어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을 보호대상아동이라고 하는데, 아동복지법상으로는 만 18세가 되면 아동이 아닌 성년으로 분류되어 보호조치를 종료하거나 입소시설에서 퇴소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그래서 아직 민법상으로는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주거와 생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집을 구하고, 일을 구해야 할 아이들을 위해 같이 법률교육 봉사를 하지 않겠냐고.
'아동'에게 '보호종료'라니 그 자체로 모순어법이 아닌가. 마음 한 곳이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결혼 직전에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30대였고, 변호사 자격도 취득한 후였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시아버지께서 계약 체결일에 부동산에 부러 찾아오셔서 "등기부등본은 확인했냐", "수도는 틀어봤냐", "장판 뚫린 곳은 없더냐", 공인중개사 분께도, 우리 부부에게도 재차 확인하셨는데 그게 어딘지 마음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열여덟 살인, 그런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부동산을 찾아가고, 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될까.
다소 충동적인 마음으로, 법률교육봉사를 같이 하자는 변호사님께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후 기회가 닿아서, 뜻이 맞는 변호사님들과 함께 몇 번 보호종료 아동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내용의 법률강의 봉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간단한 내용에, 별다를 것 없는 발표양식인데도, 아이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도 질문이 너무 많아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의젓함이 안타까웠다.
최근 몇 년 간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관심이 높아지고, 캠페인을 하는 공익법인들이 생기고, 제도개선 및 관련 법령의 개정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결과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