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신청 제도는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 등 막강한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1972년 유신헌법의 등장과 함께 재정신청 대상 사건이 공무원 범죄 3개로 대폭 축소되면서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35년의 세월이 지난 후 문민정부 출범과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디딤돌 삼아 다시 부활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대상 사건이 고소사건 전부와 일부 고발사건으로 늘어나면서 검찰의 불기소사건을 고등법원(재정법원)이 다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법 개정 이후 재정신청 사건 접수은 해마다 늘어 지금은 한 해에 수만 건씩 접수되는 양상이지만, 재정법원의 공소제기결정 비율은 100건 대에 불과해 인용률이 채 1%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정법원이 자체적인 추가 조사권한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수사기관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도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수사기록이 부실할수록 재정신청을 인용률이 낮아진다는 모순도 있다. 무엇보다 2007년 법 개정 당시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재정신청을 통해 기소된 사건의 공소유지 주체를 기존의 공소유지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로 변경하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본래 법률 개정 취지가 반영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법개혁 일환으로 시작된 최초의 취지와 달리 지금에 와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듣고 있는 실정이다.
2007년 형소법 개정 당시 공소유지 주체를 검사로 바꾼 이유에 대해, 당시 국회에서는 재정신청이 크게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공소유지변호사를 지정해 별도의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고, 수사와 기소에 전문성을 갖춘 검사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검사가 공소유지를 담당한 이후 재정신청 사건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거나 아예 구형을 하지 않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재정신청으로 기소된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은 "공소유지 검사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거나 "검찰에 스스로 결정을 바꾸라고 강제할 수 없는 노릇인 만큼, 특별검사처럼 검찰 외부의 법조인에게 재정신청사건을 맡기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민유숙 대법관은 2017년 대법관 청문회에서 "재판을 해보면 재정신청 사건에서 검사가 제대로 유죄 입증을 안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별도의 전담 변호사를 둬 공소유지를 하는 게 좋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단체들은 꾸준히 공소유지변호사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2017년 12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제출한 권고안에도 변호사가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하도록 형소법 개정을 건의하도록 권고했다. 2012년 이후 국회에서 공소유지변호사 제도 재도입을 위한 입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입법화에는 실패했다.
재정신청 제도가 검찰의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견제하고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그에 걸맞은 수단과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검찰로서도 굳이 불기소했던 검사가 다시 공소유지를 담당함으로써 공소유지 활동이 부실하다거나 고소·고발인 보호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받을 이유가 없다. 범죄 피해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고 침체된 변호사 업계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공소유지변호사 제도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