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통신의 비밀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의 업무나 대화 속에서 통화나 대화의 녹음이 무수히 행하여지고, 공개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연 통신의 비밀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으로서의 효력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스마트 폰은 굳이 초소형녹음기가 없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통화나 대화의 녹음을 가능하게 하고, 심지어 자동 기능을 활용하면 모든 통화내용을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에 대한 과잉의전 논란에서 제보자의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녹음 파일이 등장하였고 법원의 판결을 거쳐 방송에서 공개되기까지 하는 등 녹음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타인 간의 사적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형사처벌 하고 있으나, 대화 당사자 중 일방이 상대방의 동의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민사소송이나 형사사건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자기를 방어할 목적으로 녹음을 하기도 하고, 업무나 거래관계 등에서 관련 증거를 남겨 후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할 목적으로 녹음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대방 동의 없는 몰래녹음이 우리 사회에서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통화나 대화의 녹음은 '불신'에서 이루어진다. 언제 갑자기 말이나 태도가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불신을 야기하고, 불신은 대비를 요구하며, 대비는 녹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녹음이 광범위하게 이뤄질수록 사회의 불신도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선진사회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의없는 녹음의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통화나 대화 녹음이 당사자도 아닌 제3자에게 공개되거나, 녹음파일을 제3자에게 제공하여 제3자가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녹음의 정당성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통화나 대화를 하는 경우 상대방의 녹음과 녹음내용의 제3자 제공, 나아가 녹음내용의 공개 등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 간에 불신을 요구하는 것이 되고, 이는 선진사회로의 도약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므로 동의없는 녹음 자체를 금하지는 않더라도 정당한 이유없이 녹음하거나, 녹음한 내용을 부정한 목적으로 활용하거나, 녹음내용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들에 대한 적절한 입법적 규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스마트폰의 통화내용 자동저장 기능을 그대로 유지할지 여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형사책임과는 별도로 법원은 정당한 이유없는 몰래녹음에 대해 음성권 침해를 이유로 한 배상책임을 보다 엄하게 물어야 할 필요도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불신을 낮추고, 통신의 비밀이 기본권으로서 보다 실효적으로 보장되도록 하기 위하여 동의없는 몰래녹음에 대한 입법적 규제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