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일컬을 만큼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배우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 간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가 결정된다. 이 점에서 결혼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만일 결혼 후 어떤 이유로든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신속히 법적인 혼인관계를 해소하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역시 결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다.
혼인신고 먼저 했다는 이유로
이혼이라는 딱지는 너무 억울
우선, 필자가 담당한 사건 중 서울가정법원에서 진행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건을 담당한 시점은 필자가 변호사가 되어 회사에 입사한 첫 해인 2008년이었기에, 필자는 의뢰인에게 좋은 결과를 선사하고 싶은 의욕적인 마음이 강했다. 의뢰인은 미국 시민권자인 상대방 남자를 소개받아 교제하던 중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식 후 미국에 같이 가서 대학원에서 유학을 하며 지내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의뢰인은 미국 비자 발급과 입학 수속의 편의를 위해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약혼식까지 올렸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둔 준비 과정에서 서로 자주 언쟁을 하는 등 다툼이 심해지자 결혼식을 하지 않고 헤어지기로 합의한 사례였다.
이 사안을 처음 들었을 때, 이미 쌍방 합의 하에 혼인신고를 하였고, 당사자가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식까지 한 상황이니 혼인무효 사유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히 과거 이와 유사한 사안에서 혼인무효를 인정한 판례를 찾지 못하였기에 '과연 혼인무효가 인정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뢰인이 20대의 나이에 실제 결혼생활도 못해보고 이혼으로 정리되는 것은 매우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당시 함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들과 논의하여 주위적으로 혼인무효 확인을 구하고, 예비적으로 이혼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약 1년간 변론을 진행하면서 '당사자들은 아직 확정적인 혼인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 입국 및 대학원 입학 수속이라는 다른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혼인신고를 한 것 뿐이며, 당사자들이 실제 혼인생활을 한 적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결과 서울가정법원은 우리 측 주장을 받아들여 혼인무효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서울가정법원 2009. 1. 23. 선고 2008드단50526 판결). 이 판결은 당사자 쌍방에게 모두 원하는 결과를 주는 것이었기에 쌍방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다.
사건을 의뢰한 당사자조차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혼인무효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기에, 판결이 나온 후 당사자와 그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고마움을 표하셨다. 의뢰인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섣불리 판단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혼인무효를 인정받은 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너무 기뻐했기에 필자도 매우 보람을 느꼈다.
두 번째 사건은 2017년 중순 수임한 사건이다. 이 사안도 남녀가 교제를 하다가 결혼을 약속하고 혼인신고를 먼저 하였고, 결혼식장을 예약까지 하였는데, 결혼 준비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하여 결혼식이 취소된 사안이었다.
처음 상담을 하러 왔을 때 의뢰인은 이미 상대방으로부터 이혼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송달받은 상태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이혼 전문 변호사들과 상담을 하고 온 상태였다. 의뢰인에게 서울가정법원 혼인무효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다고 알려주며, 유사한 사안으로 보이니 혼인무효 확인청구를 주위적으로 해 보고, 예비적으로 이혼 및 손해배상 청구를 해 보자고 권유하였다. 처음에 의뢰인은 그동안 여러 군데 상담을 받아오면서 반소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말만 들었지, 이런 사안은 혼인무효는 안 된다고 들었다며 반신반의 했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담당변호사들이 상세한 설명을 하고, 밑질 것은 없으니 주위적으로 혼인무효 청구를 한 번 해 보자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의뢰인이 결국 사건을 위임하기로 하였기에 담당변호사들은 상대방 대리인과 협의하여 당초 상대방이 제출했던 이혼 청구의 소를 취하하고, 우리 측에서 먼저 혼인무효 소장을 제출하기로 했다. 그 후 약 1년 간 1심이 진행되었는데, 이 사건은 당사자 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었고, 주고 받은 예물의 가액도 상당하여 혼인무효만 주장하지 않고, 예비적으로 이혼 및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은 물론 상대방은 혼인취소 청구까지 하였다. 이에 쟁점이 분산되고, 누구의 귀책으로 혼인파탄이 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1심에서는 혼인무효 청구가 기각되고, 이혼 및 손해배상 청구만 일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우리측은 혼인무효 청구에 중점을 두어 주장을 간결하게 정리했고, 쌍방 모두 금전지급 청구는 취하하기로 했다. 그 결과 2심에서는 민법 제815조 제1호에서 규정한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판단되었다. 이 사건은 유학이나 입국의 편의라는 다른 목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혼인무효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이 판결 역시 당사자 쌍방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다.
‘실제로 혼인한 적 없음’ 강조
이혼 아닌 ‘혼인무효’ 판결받아
판결 확정 이후 의뢰인은 1심에서 혼인무효가 인정되지 않아 상심이 컸는데 이를 보상받았다며 너무 감사하다고 거듭 고마워했다. 그 후 의뢰인은 다른 분과 결혼식을 올리고 너무나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시기에 이 사건 역시 너무나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인 2021년 5월 12일 선고된 서울가정법원 2020드단142410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0년 8월 회사 사무실로 누군가가 상담을 요청한다며 전화를 해왔다.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필자의 혼인무효 2건 승소 경험을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하면서, 사안을 간략히 설명하고 혹시 혼인무효가 가능한지 물었다. 이 의뢰인도 여러 이혼 전문 변호사들과 상담을 많이 했는데, 혼인무효가 가능하다는 곳은 없었다고 하며 내용을 설명했다. 해당 사건은 교제 중이던 남녀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후 나중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결혼 준비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여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안이었다.
필자는 기존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혼인무효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의뢰인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역력했다. 의뢰인과의 상담을 거쳐 혼인무효 소장을 작성한 다음 신속히 제출했다. 당사자끼리 예물을 주고받거나 금전적으로 정리해야 할 부분이 없어 비교적 간단히 소장을 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담당재판부는 첫 기일에 바로 변론종결을 하고, 추가 자료가 있다면 제출하라고 한 후 2021년 5월 12일 혼인무효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 역시 쌍방 모두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다. 판결이 선고된 후 당사자는 예상치 못했는데 너무 기쁘다고 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앞서 언급한 3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법률상 정해진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혼인무효 판결을 받는 것이 힘든 과정이었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고 새 출발하는 당사자들로부터 만족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매우 뿌듯했다.이러한 판례의 경향에 따른다면, 앞으로도 혼인관계의 실체에 나아가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이 '이혼' 대신, '혼인무효' 판결을 받음으로써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최유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