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은 고사리의 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 값 나가는 산약초를 캐내듯이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고사리를 채집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제주 고사리는 '따는 것'이 아니라 '꺾는 것'이다. 고사리를 '따러 간다'는 사람이 있다면 제주 사람들은 응당 어설픈 고사리 체험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금세 눈치챈다.
송무와 상담에 지친 한 주를 보내고 다가오는 주말은 늘 산으로, 들로 고사리 채집에 나선다. 그래 봐야 3~4주다. 이 좋은 봄날, 다가오는 주말에 무엇을 해야 이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호사다. 고사리 경쟁이 나름 치열해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새벽부터 길을 나서지만, 나는 해가 중천을 넘어갈 때 즈음해서야 고사리 여정을 나선다. 그저 손맛(?) 정도 보는 것이 소소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는 고사리밭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고사리가 나름의 중요한 자산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고, 한편으론 언제 이혼해 집을 나가버릴지 모를 그저 미운 며느리에게 중요한 자산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시어머니의 결연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음식이 고사리이다. 고사리는 제주 사람들에게 나름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그만큼 고사리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고사리는 독초다. 외우기도 쉽지 않은 거창한 학명을 가진 독성분을 품고 있다. 날 것으로 먹었다가는 심하게 탈이 나거나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펄펄 끓는 물에 한 번 삶아내어야만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된다. 어떤 용감한 이가 이 야생의 독초를 처음으로 먹어볼 생각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제주의 소들은 용케 고사리만 제쳐두고 풀을 뜯어 먹는다. 일절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고사리가 독초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화의 과정일까, 아니면 학습의 대물림일까.
모르는 사람들은 변호사가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인줄 안다. 실상은 글로 먹고 사는 직업인데 말인다. 가공되지 않아 잔뜩 독을 품고 있는 당사자의 거친 주장에서 독을 걸러내어 먹기 좋은 식재료,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변호사의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이 곧 서면이다. 잘 삶아내어야 한다. 어설프게 삶아냈다가는 자칫 탈이 나는 식재료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김용학 변호사(제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