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국민은행
logo
2023.09.21 (목)
지면보기
구독
한국법조인대관
김지형의 추상과 구상
반가사유(半跏思惟)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
2022-06-23 09:08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메일
URL 복사
인쇄
글자 크기
스크랩
기사 보관함
스크랩 하기
로그인 해주세요.
기사 메일 보내기
로그인 해주세요.

2023n_chu_gu.jpg


때론 하나의 문구나 한두 마디 말이 수천수만 마디의 글이나 말보다 더 강렬하고 더 많은 것을 전한다. 소크라테스의 “Know Yourself”, 애플의 “Think Different”, BTS의 “Love Yourself”가 그 예이다. 하지만 때론 완전한 묵언이 수천수만 마디의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국보 반가사유상이 그러했다.

 
한쪽 무릎 위에 다른 쪽 다리를 올려 가좌(跏坐)를 반(半)만 취한 자세. 살짝 고개 숙인 얼굴의 한쪽 뺨에 손가락 끝마디를 살짝 대어 사유하는 자세.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살짝 올라간 다문 입 꼬리로 미소 짓는 모습 아닐까? 도대체 이 반가사유 보살상은 1400년을 뛰어넘은 긴 세월의 묵언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179655_3.jpg

 
적어도 반가사유의 심오한 미소에서 험담·경멸·모욕·증오·배제·보복·폭력을 담은 언어를 떠올릴 수는 없지 않을까? 도리어 그러한 말 짓을 일삼는 세상 사람의 어리석음을 온화하게 꾸짖는 것은 아닐까? 아니, 꾸짖기보다는 너그러이 그들의 온갖 허물을 감싸 안아주는 것 아닐까? 세상사를 옳고 그름으로 가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일깨워 주는 것 아닐까?


‘知者는 不言이고, 言者는 不知니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풀이할 수도 있겠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말이 많지 않고,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잘 모르는 사람이다.’ 되도록 말을 아끼자는 말이다.


1400년을 뛰어넘은 긴 긴 세월

묵언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참다운 말·글에 목마른 이즈음

도덕경의 ‘지자불언’이 떠올라 

 

국어사전의 우리말 어휘나 웹스터·옥스퍼드 사전의 영어단어는 몇 개일까. 거의 50만 개에 가깝다고 한다.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단어의 숫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오늘 자정이 지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다만, 당신이 꼭 남기고 싶은 단어 하나는 남겨둘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단어를 고를 것인가? 당신이 그것을 쓰거나 말하는 것은 지자불언(知者不言)이라 해서 주저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말 못지않게 업을 쌓기 쉬운 일이다. 그래서 항상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땅으로 넘어진 자 땅으로 일어나듯이, 업은 업으로 갚아야 하지 않을까? ‘악업’ 말고 ‘선업’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기려는 한 단어가 무엇이든, 마치 전쟁과도 같은 분열과 대결을 부추기는 말/글은 악업이다. 평화롭게 공존 공생하고 화합을 길어내는 말/글이 선업이다. 누군가의 언동을 쓰레기 대하듯이 멸시하고 깎아내리며 혐오와 냉소를 퍼부어 상처를 내는 말/글은 악업이다. 넉넉히 여유를 갖고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점잖고 격조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품격과 관용의 말/글이 선업이다.

 
참다운 말/글에 목마른 이즈음에 반가사유를 만나 지자불언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

리걸 에듀
1/3
legal-edu-img
온라인 과정
실무자를 위한 행정처분 대응방법
김태민 변호사
bannerbannerbannerbannerbannerbannerbannerbannerbanner
구독 서비스 결제 안내
이용 중이신 구독 서비스의 결제일은 7월 1일입니다.
원활한 서비스 이용을 위해
간편결제 신용카드를 등록해주시기 바랍니다.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인기연재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8.24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배석준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층
발행일자
1999.12.1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