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애호가들에게 로마네 콩티는 판타지(Romanee-Conti)이다. 누구나 꿈꾸지만 이룰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이다. 아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비싼 액체류가 아닐까?
평소 카리스마와 보스기질로 유명한 어느 기업의 회장님이 가족 사이에서 발생한 아주 내밀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김 변호사는 우여곡절 끝에 소송을 통하지 않고 협상으로 그 사건을 조용히, 깔끔하게 해결해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회장님께서 몹시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내가 지금 와인을 한 잔하려고 하는데, 이 와인을 보니 김 변호사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네. 혹시 지금 올 수 있나?” 아무리 회장님이지만 갑자기 전화해서 고작 와인 한 잔하러 당장 오라고 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장님, 제가 오늘 중으로 처리해야 하는 급한 업무가 있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거절하면서도 와인 애호가로서의 호기심을 누를 수가 없어서 결국 물어보고야 말았다.
“근데 무슨 와인인가요?”
“어차피 오지도 못하는데 그건 알아서 뭐하게 허허. 물어보니 알려주자면 로마네 콩티 1985년산이네.”
그 말을 들은 김 변호사는 심장이 요동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을 꼴깍 삼키고나서 “아 회장님, 생각해보니 이 일은 주말에 처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 즉시 택시를 타고 회장님의 자택으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그 자리에는 회장님과 임원 5명이 있었다. 김 변호사까지 포함하면 7명이다. 와인 한 병을 적절히 분배하면 대략 7잔이 나온다. 그런데 회장님께서 손수 한 잔씩 따르시더니 와인잔을 번쩍 들고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를 외치면서 ‘원샷’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임원들도 모두 “위하여”를 외치며 와인을 한 번에 목구멍에 털어 넣은 후 김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망연자실한 김 변호사는 결국 ‘원샷’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 눈물의 로마네 콩티여! Easy come, easy go!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로마네 콩티를 맛볼 기회를 얻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회장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김상훈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트리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