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12. 10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24살의 노동자가 협착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우리 사회는 작업장 안전에 의무를 다하지 않는 기업의 무책임함에 분노했고, 사람들은 청년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죽음의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 즉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대됐다. 무분별한 도급의 제한,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안전하지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됐다.
이처럼 노동현장의 안전과 산재사고 예방에 관한 화두를 던진 고 김용균님 사망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는 2022. 2. 10. 있었고 지난 6. 7. 항소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원심은 사건의 무게와 그 책임에 크기에 비하여 가벼운 형량이 선고됐다는 목소리가 높고, 원청(한국서부발전)의 대표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1심 판결을 짚어보고 항소심 재판부가 유념했으면 하는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심 재판 선고의 주요 내용 및 결과
사고가 일어난 발전소는 2012년경부터 2017년까지 총 59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이었고 위 59명의 재해자 중에서 단 2명을 제외한 57명의 노동자가 모두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특히 태안발전본부는 석탄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 벨트에 대한 점검 보수 작업 시 벨트와 이를 받치고 있는 롤러인 아이들러가 맞닿아 있는 물림점에서 협착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어 안전장치로 방호설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사고발생시 즉각적인 비상조치를 할 수 있도록 2인1조로 작업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었다.
피해자의 사고 발생 경위와 원인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고 당일 컨베이어 벨트 등 설비를 점검하고 탄 처리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와 아이들러 사이 물림점에 협착되는 사고를 당해 사망하였음'을 인정했다. 피고인들은 1심 재판과정뿐만 아니라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사망 과정 및 그 원인을 모르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피해자가 근무했던 작업장은 방호설비가 설치되지 않아 사고위험이 상존하는 곳이었다. 사고 시점은 피해자가 업무를 수행하던 시각이었다.
피고인들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가 점검을 위해 컨베이어벨트 외함 내부로 신체의 일부를 집어넣는 것이 피해자의 일탈행위 또는 과잉행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가 정상적인 업무범위를 벗어나서 일하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점검구 안을 들여다보는 행동은 통상적인 점검방식이었고 낙탄이 설비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 안을 면밀히 들어다 볼 수밖에 없었고, 전력생산량의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컨베이어벨트를 정지시키지 않고 점검작업을 하는 점 등의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해 피해자는 정상적인 업무수행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 검찰은 원·하청 대표이사 및 소속 임직원들 14명을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안전조치의무 위반치사, 위험기계방호조치 의무위반, 작업중지 등 위반)으로 기소했었다. 1심 재판부는 원청 본부장 등 여러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최고 책임자인 원청 대표이사의 경우에는 사고발생의 위험을 사전이 알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원청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 하청 대표이사, 하청 태안사업소장에게 피고인들 중 가장 높은 형량인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금고1년부터 벌금700만원까지 각각 선고했다. 원청은 벌금 1000만원, 하청은 벌금 1500만원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원청 대표이사만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모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판단의 한계와 항소심 재판에서 기대
1심 판결은 사건의 심각성과 피고인들의 책임에 비해 양형수준이 낮고, 책임의 무게가 가장 무거워야 할 원청 대표이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는 물론이고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책임도 없어 무죄라고 판단했다. 특히 원청 대표이사가 발전소 사고 현장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분이 문제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원청 회사와 본부장 등 임직원들의 경우 발전설비에 관한 주요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설비 운전 및 운전원들이 작업에 관하여 구체적, 직접적 업무지시를 하고 감독을 하였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운전원들의 안전을 보호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으나, 원청 대표이사만 여기서 예외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청 대표이사에게 주의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①대규모 인적, 물적설비를 갖추고 있는 발전회사의 대표이사는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 용역계약의 변경 등의 업무는 본부장급 이하 임직원들의 전결 사항으로 대표이사가 관여하지 않았고, ②원청 대표이사는 발전소 현장을 방문하기는 했으나 당시 문제점을 알지 못했고, ③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이나 운전원들의 작업상의 구체적인 위험성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④용역대금 설계의 문제점을 인식할 기회도 없었고 ⑤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는 점 등을 볼 때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검사가 주장하는 여러 사정(2016년 발생한 서울메트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원 사망사고로 2인1조 근무가 상식적인 조치라는 인식이 확산된 점, 원청 대표이사가 2018년 안전보건경영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자신을 안전보건 최고책임자로 지정한 사정,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조치로서 설비개선과 인력증원은 최고경영자인 원청 대표이사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인 점, 컨베이어벨트의 특성상 위험성이 상당하였고 2004년경 발생한 협착사고에 관하여 단독작업의 문제점이 서부발전 본사로 보고되었던 사정, 매월 발전본부 본부장으로부터 현안에 관한 보고를 받은 사정들)만으로는 원청 대표이사의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1심 판결문대로라면, 최고경영자 지위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사항을 보고받지 않아 그 위험성을 사전에 인식하지 못했다면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얘기다. 석탄발전소에서도 일해본 적 없는 대표이사라 현장의 위험성을 모르고 안전책임자를 별도로 배정해두고 보고조차 받지 않을 정도로 안전보건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은 것을 면책의 사유로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 원청의 경우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성 관리가 왜 최고경영자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지, 안전보건 체계 확보를 위한 최종적인 결정권자가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작위 책임은 없는 것인지 철저한 사실관계 파악과 법리적 해석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묻고 싶다.
이러한 1심 판단이 유지될 경우 기업에게 대단히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대표이사 등 사업주는 안전보건에 관한 보고와 지시를 받는 것이 불리하니 일상적인 업무에서 안전보건 이슈는 애써 외면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사업주 등이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다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되어 있어 사업주 등이 더 이상 위 사건의 원청 대표이사처럼 안전보건에 무관심할 수 없다. 김용균님 사망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기존의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위험한 사업장이 개선되지 않고 핵심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던 기존 판례를 반복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잘 운영되어야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1심 재판부는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성을 관리할 사업주의 주의의무에 대한 규범적 해석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본 결과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하는 사업주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 판단을 하였다. 이 부분이 항소심에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지난 7일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피고인측은 “이 사건 사고가 어떤 경위로 발생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주의의무를 특정하기도 어렵다"라고 주장하며 모든 혐의를 여전히 전면 부인하고 있다. 피고인들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도 양형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2022. 8. 11. 다음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 마지막으로 항소심 재판부에 요청하고 싶은 것은 실체적 진실에 보다 다가서기 위해 부디 억울한 죽음을 주장하는 유족 측의 재판참여권과 재판기록열람을 허가해 달라는 것이다.
문은영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자건강권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