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반인 상대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앞에 앉은 분에게“혹시 음주운전해서 벌금내신 적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있다고 대답했다.“그럼 전과자시네요?”했더니, 깜작 놀라면서“내가 왜 전과자에요?”라고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이후 몇 차례 강의에서 같은 질문을 해보았더니 다수가 벌금형을 전과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고인이 된 어느 가수가‘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노래로 인기를 끈 적이 있는 것과 반대로“넌 비정상이야”라고 하면 상대방과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아마 인간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본능적으로 싫어하는가 보다.
세계보건기구는 2019년 ICD(국제질병분류)-11을 발표하며 5만5000개의 질병코드를 정하였다. 이는 지난 1990년 발표한 ICD-10에서 정한 질병코드 1만4400개에 비해 3.8배에 증가한 것이다. 새로 코드가 부여된 것들을 몇 개만 보자. 비만은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이용장애(소위 게임중독), 음란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섹스중독이 새로이 등재되었고,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강박증상, 수감상태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코드를 부여받았다. 질병코드를 부여받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의사가 진료를 한 사람에게“넌 비정상이야”라고 말할 기회를 늘리게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비약이라고 나무랄 분도 있을 수 있다. 원인이 확실한 질병을 의미하는 disease와 일상생활의 기능(order)에 이상(dis)이 생긴 것을 의미하는 장애(Disorder)를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부정맥이 질병인지 장애인지 구별하라고 하면 맞힐 확률이 얼마일까. 전문가와 일반인의 인식은 다르다. 법률가에게 너무나 명백한 벌금형이 일반인에게는 전과로 잘 인식되지 않듯이. 물자가 귀한 시절에 태어난 부모님 세대들은 잘못하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강박증상의 질병코드가 부여될 수 있다. 옛날에는 다소 산만하다고만 하였으나 이제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질병코드가 부여될 수 있다. 입을 실룩거리거나 뜬금없이 고함을 치르는 아이는 틱 장애로 진단받을 수도 있다. 정확한 진단에 의한 치료도 좋지만 이런 질병코드는 자신이 환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성급한 진단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낙인을 찍게 되고, 부모들의 지나친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약 30년 사이에 인류에게 질병(장애 포함)이 3배 이상 새로 발생하였을 리는 없다. 의학발전을 폄하하려는 의도 역시 없다. 다만, 너무 의학적인 면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지 말았으면 한다. 벌금형을 받고도 전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도 좋지 아니한가. 공직에 출마할 생각만 없다면 말이다.
이경권 대표변호사 (엘케이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