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법조인은 “특별한” 직업이었다. 국가의 틀이 제대로 다 잡히지도 않았고 법조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도 않았던 1950~60년대야 말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1970~80년대에도 법조인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법조인 숫자가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1981년에 대폭 증원하여 2배로 만든 수치가 겨우 300명이었다. 1990년경 전국 개업변호사 숫자는 모두 합해서 2000명이 되지 않았다.
이런 중에 민주화 운동에 직·간접으로 헌신하여, 독재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고 시민들의 의식을 고취하는 등 민주화 과정에서 큰 기여를 한 변호사들이 여럿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거대 로펌으로 성장한 법률사무소들을 창립하여 기업 법무의 기초를 닦아온 변호사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회 일부에서는 “허가받은 도둑”이라 폄하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변호사는 대체로 존중받는 직업이었고 민주화에든 산업화에든 변호사가 큰 기여를 하였다.
시대가 변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외견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이른바 완성사회가 되었고, 갈등이나 모순은 세상이 뒤집힐 만큼 누적되지 않도록 미리 관리된다. 변호사는 매년 1700명 이상 배출되고, 사회의 각 영역에 이미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나 보수라는 입장은 수정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사소한 차이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힘들게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는 변호사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찾아보기 어렵고,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는 변호사는 정파적 활동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시선을 받는다. 산업활동을 뒷받침하여 기업법무를 담당하는 로펌 변호사나 사내 변호사는 대자본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는 시선을 받는다.
크지 않아 보이는 세상의 불합리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갈 때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
법률가들이 할 일은 아직도 많아
이런 상황에서 젊은 변호사들은 무얼 해야 하는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역사적 과업은 보이지 않는다. 산업화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큰 경제적 대가를 획득하는 것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작은 권력을 추구하고 조그마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면서 소시민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듯하다. 게다가 여러 경쟁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한국 사회가 구성원 개개인에게 주는 스트레스의 양은 엄청나다.
하지만 바꾸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곳곳에 불합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다. 경제적 수준에서도 그렇고 시민의식에서도 그렇다. 공직사회의 남아있는 부패가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베트남, 인도 등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국 공무원들은 대단히 훌륭한 집단이다. 1인당 소득 3만 달러 대의 사회가 주는 안정감과 사회적 기반은 뭔가를 기획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준다.
세상을 뒤집어야만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불합리와 비경제를, 비록 그것이 크지 않아 보이더라도 하나하나 개선해 갈 때, 그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이를 통한 대가를 획득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그런 개선의 주동력이 되겠지만, 인간사회의 모든 거래방식 개선에는 법률가들의 작업이 필요하다. 가령 택시 앱의 운영을 둘러싸고 현재 논란도 있지만, 이제는 그 편리함 때문에 누구나 택시 앱을 사용한다. 여성들의 귀갓길은 택시 앱 때문에 훨씬 안전해졌다. 그 앱의 출시·배포에 참여한 변호사들에게 감사한다. 지구적 물류대란 속에 조금이라도 싸고 빠르게 각종 물품이 수입되도록 노력하는 국제 거래 변호사들에게 감사한다. 산업재해를 줄이면서 동시에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산업안전법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있는 변호사들에게 감사한다. 법률가들이 한국에서 할 일은 아직 많고, 역사가 진행되는 한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전원열 교수 (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