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TV 연속극으로는 보기 드물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 중이라 한다. SNS에서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런지, 보기 전인데도 반쯤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휴정기를 맞아 몇 개의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쉬면서까지 법정드라마를 봐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TV 앞에 앉고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게 만드는 ‘명불허전’의 작품이었다.
‘우영우’라는 캐릭터 자체가 주는 매력에 더해 그 바탕에 깔린 법정 공방도 법조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영우가 천재적인 기억력을 발휘해 결정적인 증거의 쪽수를 바로 지목해 상대방을 할 말 없게 만드는 장면, 폭행을 당하였음을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뒤집기 한판’을 보여주는 대목(‘그렇다는 증거 있습니까?’로 되돌려주는 카타르시스!), 도로공사를 저지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된다던가.
대체로 ‘모자 속에서 토끼를 꺼내는 마법(pull a rabbit out of the magician’s hat, 보스턴리걸 시즌 1 에피소드 1 참조)’이라는 법정드라마의 전통적인 문법을 잘 따르고 있다고 느꼈다. 거기에 ‘K-드라마’다운 출생의 비밀 시퀀스나 아니나 다를까 사내 연애까지 짜증나지 않게 잘 버무렸고.
그렇게 휴정기의 밤들은 잘도 흘러갔다. TV 앞 푹신한 소파에서 이젠 몸을 일으켜 현실 속 법정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이곳에서도 ‘모자 속에서 토끼를 꺼내는 마법’과 같은 통쾌한 순간이 자주 있으면 좋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법정드라마 밖의 법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변호사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입을 닫게 할 결정적인 증거 같은 건 원래부터 없었고(기억력이 달리는 게 아니다), 한판 뒤집기는커녕 변론 내내 지루한 ‘샅바싸움’만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가 판정승으로 겨우 이기면 다행이고. ‘마술’같은 재주보단 재판 진행에 맞춰 ‘한 땀 한 땀’ 유리한 간접사실과 정황증거들을 모아나가는 끈기, 그리고 재료들을 잘 조합해 재판부 앞에서 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치밀한 구성력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싶다.
어느덧 휴정기는 다 지나가고 다시 재판이 잡혀있는 첫 주 월요일이다. 수많은 소송대리인과 변호인들께서는 미뤄둔 방학숙제처럼 ‘서면 마감’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테다. 그러고 나면 다시 옷깃을 여미고 법정이라는 전쟁터로 발걸음을 떼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그런 수고로움 덕분에 ‘법정드라마 같지 않은’ 사건의 홍수 속에도 그나마 하나하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갈 수 있기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