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상에서 소비하는 대부분의 물건이 소수의 거대 기업 제품임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백 개의 뷰티 브랜드는 몇 개 기업의 소유이며, 미디어 기업 6개가 미국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빅5 테크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하다. 권력과 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은 갈수록 소수에게 집중된다.
2020년, 미국 시장 점유율 21%로 출판계의 1위인 펭귄 랜덤 하우스가 빅5라 불리는 출판사 중 하나인 사이몬 슈스터를 인수할 계획을 발표했다. 미 법무부는 이 합병을 막기 위해 2021년 반독점 소송을 걸었다. 메릭 갈랜드 법무부 장관은 “최대의 출판 기업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인수한다면, 업계에서 전례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저자에게 경제적인 타격을 미칠 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다양한 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했다. 이 사건의 재판은 지난 8월 초에 열렸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이 정부 측 증인으로 나서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부 측은 베스트셀러의 과반을 차지하는 두 출판사가 합친다면 작품을 놓고 경쟁할 출판사가 줄어들고, 저자가 받는 계약금(advance)이 낮아져 저자의 생계가 힘들어지며, 신인 작가들의 출판 기회 역시 감소되고 결국 독자도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펭귄 랜덤 하우스와 사이몬 슈스터는 이 합병으로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져 저자에 대한 대우가 개선될 거라고 주장한다. 사이몬 슈스터는 이 합병이 성사되지 않아도 다른 출판사나 사모펀드에 의해 인수될 운명에 놓여있기 때문에 시장이 흔들릴 것은 분명하다.
美 거대 출판사 간 인수합병 추진
정부서 반독점 소송제기로 법정에
작가·출판사·독자 입장 대변해 줄
건전한 출판시장 기대 가능할까?
출판계 사람들은 합병으로 인한 감원 조치로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등이 고용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물론, 스타 작가나 화제의 데뷔작을 제외한 일반 신인이나 'midlist'라고 불리는 '평타'를 치는 대부분의 저자에게 돌아갈 물적 인적 리소스가 급격히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또한 작품 계약을 위한 옥션 경쟁이 줄어들어 작품 가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몇 개의 언론에서는 아마존의 존재 또한 강조한다. 출판 유통에 막강한 협상권을 가진 아마존과 기존의 출판사가 맞서려면 출판사도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과 아마존을 더 강력하게 통제하지 않고 출판사에 집중하는 것은 타깃이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공정거래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장하여 선택권을 제공하고 혁신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몸집이 큰 소수의 플레이어가 독자적인 우위를 점령한다면 저자와 독자가 선택할 자유와 옵션이 감소하고 독창적이며 다양한 작품이 줄어들게 된다. 출판업계에서도 판을 흔드는 디스럽터를 기대하지만, 책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의 본질을 흔들지 않되 그 비즈니스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글을 쓰며 독자와 만나기를 열망하는 작가 지망생, 생계의 수단으로 글을 쓰는 저자, 이 사건의 영향을 받을 중소·독립 출판사, 독립서점, 다양한 작가들의 고유한 소리를 기다리는 독자, 이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건전한 출판 시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소은 외국변호사(미국)/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