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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사실과 사건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2022-10-1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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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발표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세 사람의 공적은 양자 얽힘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은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의 세계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직감과 어긋나는 일이 일어난다. 법률가의 눈에는 비논리적인 현상이 일반화한 듯한 혼란의 현장이다.

양자는 극소의 물리량으로, 에너지 단위이자 패턴이다. 양자 얽힘이란 한 쌍의 양자에서 한쪽의 상태가 결정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쪽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말한다. 양자 얽힘은 양자 중첩이 전제되는데, 양자에 양립이 불가능한 두 개 이상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일컫는다. 디지털 체계에서 하나의 값은 0 아니면 1이다. 반면 양자는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중첩 상태로 있다. 관찰하는 순간 0 또는 1로 결정된다. 이러한 양자가 한 쌍일 경우, 하나가 0으로 결정되면 떨어져 있는 다른 하나는 1이 된다. 강력한 상관관계로 얽혀 있다는 말이다.

양자 현상의 응용은 놀라운 결과들을 보여 주지만, 양자도 그 작용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가 모니터로 파형을 보여 준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경험조차 불가능한 것은 실존하는가?

우리는 대체로 느낄 수 있고 이해 가능한 세계 속에서 살아 간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의심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것 중 하나가 사건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며 겪는다.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내며, 다른 사건과 부딪친다. 역사학자의 말처럼 “사건은 먼지와 같다.” 사건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인데, 보이는가? 헤아릴 수 있는가? 하나의 사건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법률가들은 사건을 대상으로 다루는 직업인인데, 기록 하나가 그 사건의 전부인가?

사건의 구성요소는 사실
사실은 사건보다 단순해 보이나
파고들면 더 복잡해져
사건이든 사실이든
보는 측면에 따라 달라져


사건의 구성요소쯤 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은 사건보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나 파고들면 더 복잡해진다. 큰 분자보다 훨씬 작은 원자나 양자의 실체가 더 미묘한 사태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싸움은 사실을 놓고 이루어진다. 재판은 물론이고 정쟁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객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굳이 ‘팩트’라고 표현하는 습관도 생겼다. 사실만 제대로 밝히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흥분한다. 그러나 사실이든 사건이든 보는 측면에 따라 다르고, 해석이 덧붙여지면 더 달라진다.

국가의 내일에 관한 대통령의 말과 양자역학에 대한 물리학자의 말을 비교하면 어떤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정치가의 말은 불신하고, 도무지 이해불능임에도 과학자의 말은 진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학적 지식 역시 사실에서 도출된다. “사실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 과학이다. 그럼에도 사실의 불확실성 때문인지 과학자의 눈에 과학은 완전무결하기는커녕 엄밀한 객관성조차 갖추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으로 팽팽히 맞서는 일은 흔하다. 그러다가 “완전히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입장이 나중에 가서 더 넓은 전망으로 합쳐져 둘 다 옳다고 밝혀지는 결말이 과학이 지닌 아름다움”이라며 평화로운 마무리를 짓기도 한다.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대개 보통사람들은 사실에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선 아니면 악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물리학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사실에는 양자처럼 서로 상반된 의미와 요소가 중첩되고 얽혀 있다. 하나의 사실을 그르다고 단정하는 순간, 거기서 옳음은 완전히 배제된다. 아울러 그 사실은 다른 사실에 영향을 끼친다.

기자들은 사실을 좇는다. 송고된 기사들을 편집하여 띄우고 배달하는 신문의 색깔은 흑인가 백인가 또는 회색인가?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할지언정 그 과정에서 쏟는 온갖 고민이 신문을 만드는 이들의 사회 기여 방식이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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