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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의 법과 사람 사이
가해자의 엄마, 피해자의 엄마
정혜진 (수원고법 국선전담변호사)
2022-10-1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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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50·변호사시험 1회) 수원고법 국선전담변호사의 ‘법과 사람사이’ 코너를 신설합니다. 정 변호사가 국선전담변호사로 법과 사람사이에서 느낀 소회를 따뜻하게 풀어나가는 3주 간격 월요일자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주머니는 내 사무실에 와서 한참을 울었다. “큰 애가 그 사고를 당했을 때 얘가 초등학생이었어요. 그때부터 얘는 하나도 신경 못 썼어요. 얘가 사춘기를 힘들게 보냈는데 저는 큰 애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 몰랐던 거예요. 변호사님, 얘마저 어떻게 되면 저는 어떻게 살아요?”

갓 스무 살을 넘긴, 아주머니의 둘째 아들은 주말에 친구들과 술집에서 또래 여자 일행과 어울리며 남녀 한 쌍씩 짝을 지어 모텔에 갔다가 여자가 동의하지 않는 방법으로 성관계를 한 게 문제가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국선변호인인 내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재판에서 만났을 때도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도 답답해서 그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 아들이 곧 구속될 것 같은데 아시는지요?”

아주머니는 국선변호사 사무실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하루도 잊은 적이 없는 사건 때문에 왔었다. 큰아들이 중학생이었을 때 또래들한테서 집단 폭행을 당해 한쪽 시력을 거의 잃었다(눈 부위를 집중적으로 맞아 시신경이 심하게 손상되었다). 피해가 컸지만 가해 아이들 대부분은 소년보호처분으로 끝났고, 주범 한 명만 정식으로 형사 재판을 받았다. 그 주범의 국선변호인 사무실에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으로 합의서를 쓰러 왔던 것이다.

“용서가 안 되죠. 어떻게 용서를 해요? 그런데 걔(= 주범) 집에 가보니 집이 비닐하우스인 거예요.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데서 할머니랑 걔랑 둘이 살더라고요. 용서가 안 돼도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중학생 때 폭행에 한 눈 잃은 장남
가해자측 형편 어려워 보상 포기
또래 여자와 놀다 성폭행한 둘째
피해자측 합의 거부로 법정구속


주범의 국선변호인이, 부모 없이 홀로 남은 손자를 키운 할머니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은 돈이라며, 가해자 아닌 할머니를 봐서 합의를 해 주십사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했다. 가해자 사는 모습을 보니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을 게 명확해 마음에도 없는 합의서를 써 주었다(사실 그 돈도 절실했다). 덕분에 주범은 징역형의 집행유예 형을 받고 할머니의 비닐하우스로 돌아갔다.

“큰아들이 스물여섯인데 몸무게가 43킬로예요. 시력만 잃은 게 아니에요. 그때 이후로 우울증과 트라우마 때문에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해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계속 집에만 처박혀 있어요.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해서 그때만 간신히 나오는데 앞도 못 보고 근육이 거의 없어서 제대로 못 걸어요. 저와 둘째가 한 팔씩 부축해서 데리고 가요.”

범죄 피해의 그늘을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던 피해자의 엄마는 이제 가해자의 엄마가 되어 있는 돈 없는 돈 다 합쳐 이 정도 마련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때 그 할머니가 내놓은 돈처럼 너무나 약소했다. 아주머니는 피해자 부모에게 무릎 꿇고 백번이라도 빌겠다며 합의를 부탁했다. 피해자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피해자 가족 측에서는 합의금에 상관없이 합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곧 민사소송도 제기할 예정입니다.” 10년 전 이 엄마가 만났던 국선변호사와 달리 나는 가해자 가족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말도 꺼내 보지 못했다. 피해자 측에게 그건 들을 필요도 없는 ‘당신 사정’일 뿐이고, 그렇다고 섭섭해할 수도 없었다.

그는 예상대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다. 선고 결과를 알려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아주머니에게 내키지 않는 전화를 했다.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흐느끼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연락 줘서 감사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큰아들을 혼자 부축해 병원에 데려가야 할, 가해자의 엄마이자 10년째 피해자의 엄마이기도 한 아주머니의 흐느낌 섞인 작별 인사에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 동안 코끝이 시렸다.


정혜진 (수원고법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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