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국민은행
top-image
logo
2023.06.06 (화)
지면보기
한국법조인대관
법대에서
비열한 거리의 깨진 유리창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
2022-10-17 07:37

 2022_lawdae_cha_face.jpg2022_lawdae_cha.jpg

 

자녀를 태우고 차를 운전해 가다 좌회전을 위해 신호대기를 했다. 배달 오토바이 하나가 내 차를 가로질러 바로 앞에 선다. 잠시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신호 같은 건 무시하고 냅다 좌회전을 한다. 더 심한 경우도 봤다.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요리조리 피해 역주행하다 골목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이라든가…. 같이 있던 자녀는 내게 말했다. “아빠, 엊그제는 인도를 걷는데 오토바이가 인도로 달려오면서 나보고 비키라고 빵빵거리던데”라고.

먹고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이겠으나, 아이들이 이런 무질서 속에서 자랐을 때 과연 우리 사회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게 될지 걱정됐다. 소년재판을 하는 동기의 말을 들어보면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도로 위에서 줄타기하듯 내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며 아이들은 심지어 ‘쿨하다’라거나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단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런 질서 위반을 제때 바로 잡지 않으면, 자칫 사회가 통제 불능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더 심각한 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거리의 ‘깨진 유리창’은 오토바이뿐만이 아니다. 차가 많은 도로에서 우회전할 때 빨간 신호등을 보고 멈춰서거나, 보행자가 있어 기다려주기라도 하면 뒤차가 잠시도 못 참고 경적을 울려댄다.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같은 이야기는, UCLA로 비지팅 스칼라 다녀온 부장님의 딱지 뗀 경험담 속에서나 들을 수 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의 거리는 사람이 있건 말건, 내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보행자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곤 하는 각자도생의 ‘비열한 거리’일 뿐이다.

일상생활 속 사소한 것에서부터 구성원 사이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커지면, 평범한 시민들은 국가와 사회를 믿음직한 것으로 느끼지 못하고, 그러면 안심하고 살 수가 없다. 요즘 부쩍 그런 약속들이 헌신짝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며 규범의 영역을 책임지는 법조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교통사건 처리를 잘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기도 한다.

국민들이 검사 출신 대통령을 뽑은 것에는 사회 곳곳의 이런 ‘깨진 유리창’을 서둘러 갈아 끼워달라는 열망이 담겨 있으리라 본다.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신뢰마저 모두 깨져나가 버린다면, 영화 ‘비열한 거리(mean streets,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3년 작)’의 찰리가 뉴욕의 뒷골목에서 본 것 같은 디스토피아가 우리를 기다릴지 모른다.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
리걸 에듀
1/3
legal-edu-img
온라인 과정
전사원이 알아야 할 계약서 작성 상식
고윤기 변호사
bannerbanner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인기연재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8.24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배석준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02호
발행일자
1999.12.1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