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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당신의 오른손이 어느 날 브로콜리가 된다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10-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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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으응, 그런 나쁜 것들을 맘속에 오래 넣고 있다 보면 사람이 버틸 수가 없어져.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

어느 날 복싱선수인 남자친구의 오른손이 브로콜리가 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광석 할아버지는 “그 친구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라며 손이 왜 브로콜리가 됐는지 알려준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남자친구는 그제야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곤죽으로 만들기 위해선 미움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소설 ‘브로콜리 펀치’의 플롯이다. 황당무계하게 다가오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딘가 현실 속에 존재할 것만 같다. 90년대생 작가(이유리)는 왜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는 상상을 했을까. 2030세대 독자들은 왜 이 소설에 호응하는 걸까. 문득, 최근 만난 사회초년생의 말이 떠오른다. “직장에선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거 같아요. 직장에서 꿈을 찾으라고들 하시는데…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고 꿈은 직장 바깥에서 찾아야죠.

그런데, 그렇게 ‘유체이탈’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소설의 남자친구처럼 자꾸 나쁜 마음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기 싫은 사람을 매일 봐야 하고, 듣기 싫은 얘기에 웃음 지어야 하고, 가끔은 양심에 어긋난 일도 해야 한다. 때로는 저 사람에게 못되게 굴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
소모되고 고갈되는 직장 안에서
좌절하는 청년들을 직시할 때다


당신은 ‘선의의 거짓말’로 자신을 속여가며 잘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런 게 사회생활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권위주의 시대에 태어난 부모 세대와 다르다. 조직의 논리 앞에서도 개성을 굽히지 않고, 권리의식이 분명하며, 취향이 뚜렷하다. 그들은 ‘존버 정신’으로 살았던 앞세대와 달리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몸에든, 마음에든 탈이 난다.

요즘 청년들이 그토록 입사하고 싶어하던 직장에 들어서자마자 ‘빛의 속도로’ 좌절하는 이유를 아는가. 그들은 “이런 곳인지 몰랐다. 내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곳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업무 시스템과 주먹구구식 보상 체계, 그리고 ‘회사의 방향을 따라 일하면 미래가 보인다’는 커리어 관리의 부재 때문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자신이 소모되고 고갈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등장인물들이 놀라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거다. 이상하다고? 생각해보라. 손이 브로콜리로 변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은가. 자신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실 손이 브로콜리가 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무서운 일은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고,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의 발상은 신통하다. 그런 일들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당장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언론사들은 앞다퉈 대서특필을 할 테고, 국회의원들은 국정조사에 들어갈 것이다. “장관님 부처에 손이 브로콜리가 된 직원들이 유독 많은 까닭이 뭡니까?” “회장님께선 ESG 경영을 다짐해오셨는데 왜 계열사들은 모조리 ‘브로콜리 풍년’인 겁니까?”

그렇다. 고통은 감춰질수록 커진다. 젊은 세대의 아픔이 눈앞에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부터 문제의 해결은 시작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소통이나 경청은 이제 권위주의적인 단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 기성세대인 우리가 할 일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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