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 다닐 때 생활비랑 책값을 버느라 법학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로스쿨 인증평가에 장서 보유량이 들어가서 그랬는지, 당시에는 법학도서관이 매달 실로 엄청난 양의 책을 사들였다. 거기에 하나하나 장서인(印)을 찍고 일련번호를 매기는 지루한 작업을 반복했다. 그때 스쳐 지나가듯 본 수많은 책들 중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있었는데, ‘러시아 마피야(마피아로 검색하면 안 나옴 주의) 현상의 이해(한종만)’와 ‘우주법(제2판, 박원화)’이 그것이다.
제목을 보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러시아 마피야 현상의 이해’를 탐독한 덕분에 러시아 마피야 조직원들의 문신으로 계파 구별을 조금은 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알아도 특별한 쓸모는 없다). 아울러 ‘우주법’이라는 분야가 있으며, 심지어 그 무렵 이미 ‘제2판’까지 교재로 나와 있을 정도로 연혁적 배경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뒤로도 쭉 우주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문헌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게 되었다. 최근 민관 모두에서 활발해지는 우주활동과 관련하여 우주법의 핵심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슈들이 다양하게 터져 나오고 있어 우주법 교재(지금은 제3판도 나왔다)를 다시 펴보게 된다.
우주개발진흥법 제15조의2는 ‘우주위험대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위 계획에 따라 운영하는 우주환경감시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2022. 10. 26. 현재 지구 궤도상 인공우주물체의 수는 2만6059개에 달한다. 한국이 발사체 개발에 성공해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린 것과 같이 우주개발 후속 국가들의 우주활동 참여가 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만든 스페이스엑스 등 민간우주기업까지 매년 천여 개가 넘는 우주물체를 쏘아 올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가 위성요격실험을 하면서 수 천 개의 파편들이 우주에 쌓여가고 있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우주공간의 자유로운 이용’이라는 UN 외기권 조약(1967년)의 첫 번째 대원칙만으로는 무분별하게 쏘아 올린 우주물체로 지구궤도가 가득 차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영화 ‘승리호’에서 본 것 같은 우주쓰레기 수거업자가 실제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미국 민간 통신위성 이리디움과 러시아의 폐기 위성 코스모스의 충돌로 대표되는 이른바 ‘우주교통사고’의 위험 역시 각국과 민간의 우주활동이 더 이상 ‘자유’의 영역에만 남아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국제 거버넌스’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우주 규범’의 정립과 ‘분쟁해결기구’의 설치에 대한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1개월 만에 첫 번째 국가우주위원회를 개최하여 우주활동의 규제에서도 확실한 이니셔티브를 쥐고자 전략적 방향을 꼼꼼하게 설정했다. 한국 등 우방국들에게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 법조인 중 이러한 우주법 논의의 흐름을 꿰뚫고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제 갓 우주개발의 첫발을 뗀 우리의 국익을 대변할 준비가 된 이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우주개발진흥법에는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우주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새 정부 들어 이를 개최하였다는 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지난 정부의 사례를 찾아봐도 민간위원 중 법조인이 위촉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주활동 전반에 대한 규범 확립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우주법 전문가 육성 차원에서라도 법조인을 국가우주위원회에 꼭 참여시켜야 한다.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