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 ‘통합’이란 말이 사라졌습니다. 놀랍게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는 통합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뒤에도 윤 대통령은 통합이란 단어를 거의 안 썼습니다(제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는 듯한데 혹시 몰라서 '거의' 라고 썼습니다).
윤 대통령은 통합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안 쓰는 걸까요? 의도적이라면 어떤 의도일까요?
저는 정치의 본령을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국민 통합’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치는 두 가지 기능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멈췄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169석 거대 야당 벽에 가로막혀 정부 입법 77건 중 단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 체제를 실감합니다. 대화와 타협, 소통과 협치는 오랫적 유물이 되었습니다. 결정하지 못하니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개혁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전쟁과 스포츠 중간 어디쯤 있을 겁니다. 전쟁에 가까이 가면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고, 스포츠로 가까이 가면 상대를 ‘이길 경쟁자’로 보게 됩니다. 스포츠는 공정한 룰·치열한 경쟁·깨끗한 승복이 미덕입니다. 훌리건을 팬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스포츠를 닮는다면 대화와 타협, 소통과 협치가 가능하겠지요. 유감스럽게도 지금 정치는 전쟁을 닮았습니다. 전쟁은 잔인합니다. 정치와 전쟁의 결정적 차이는 퇴로를 열어주느냐에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는 전쟁처럼 퇴로를 열어주지 않고 몰살시킵니다.
정치가 전쟁이 되었다면 평화가 오기 전에는 국민 통합도 볼 수 없습니다. 전쟁은 적과 동지만 있을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비판에 대해 “모든 면에서 늘 저쪽이 더 문제”라며 “저쪽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고 이쪽의 보다 작은 문제들은 훨씬 더 부각되는 이중잣대가 문제”라고 반박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이쪽’, ‘저쪽’이란 표현입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 편’이란 표현도 썼습니다.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는 표현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닙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훌리건’을 방치한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타도’와 ‘박멸’은 정치의 언어가 아닙니다. 그건 전쟁의 언어, 혁명의 언어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청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뉴노멀이 됐습니다. 언제부터일까요? 돌이켜보면 역설적으로 ‘정통성’이 독이 되었습니다.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36.6%의 낮은 득표율로 당선돼 정통성이 약했던 노태우 대통령만 자기 정체성을 뛰어넘어 ‘통치 연합’을 확장한 3당 합당을 결단했습니다. 노태우 이후 모든 대통령은 외연 확장을 위해 구축한 ‘선거 연합’을 깨고 ‘정체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정통성에 자신 있던 최초의 문민 대통령 김영삼은 ‘군부 청산’, 최초의 정권 교체 대통령인 김대중은 ‘보수 청산’, 노무현은 ‘기득권 청산’, 이명박은 ‘좌파 청산’, 박근혜는 ‘종북 청산’, 문재인은 ‘적폐 청산’을 집권 목표인 양 앞세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OO 청산’으로 새로운 레떼르가 또 붙을 겁니다. 청산의 강도가 점점 세지면서 정치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이젠 누구도 통합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은 통합이란 단어를 한 번도 안 쓴 대통령으로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 때까지는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항상 통합을 말했고, 고위직 인사 때도 통합 차원에서 형식적인 안배를 했습니다. 지금은 통합을 말하는 정치인도 없고, 통합의 프로토콜도 다 사라졌습니다. 이 전쟁 같은 정치의 끝이 저는 두렵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비토크라시를 극복하고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요. 국민 통합을 위해 헌신하는 대통령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절망적인 이 어두움은 시대의 마지막 밤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전야일까요?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