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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만나는 법] 스페셜리스트에서 자유로운 제너럴리스트로…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
김도언 시인(소설가)
2022-12-1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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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시점에서의 소회부터 밝히면 양중진(54·사법연수원 29기) 변호사와 대화를 마쳤을 때 나는 사람의 태도가 그 삶을 결정짓는다는 근대적 테제를 확실히 실감한 듯했다. 태도는 대개 감각적 지향이 윤리적 감수성과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그의 태도는 그가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아왔는지를 능히 짐작게 하는 것이었다.

 

[ 약 력 ]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라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2000년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공직을 시작했다. 법무부 부대변인,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광주지검 공안부장,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대검찰청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국가정보원장 법률보좌관, 강릉지청장 등을 역임했다. 수원지검 1차장검사를 끝으로 지난 7월 검찰을 떠나 9월부터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검찰 재직 시절 '글쓰는 검사'로 유명했다. 저서로는 《검사의 삼국지》, 《검사의 스포츠》,《검사의 대화법》이 있다. 또 농구를 좋아해 검찰 내 농구동호회인 '아미쿠스'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느린 말투가 시종여일했던 양 변호사는, 실례되는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시골초등학교의 교감 선생님 같은 인상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분이 공안부 검사를 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를 겪어본 사람들은 나의 이런 호들갑스러운 의문에 슬며시 웃으며 공감하리라. 우리나라의 풍설 중에 사람은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살짝 뒤집으면 사람에게는 살아온 내력이 그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말도 성립될 것이다. 양 변호사는 이 풍설의 생생한 증인처럼 보였다.

그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무주를 거쳐 남원에서 자랐는데, 그런 잦은 이사는 여전히 구존해 계신 그의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3녀 2남 중 넷째로 딸만 셋을 두고 있던 양친이 얻은 첫아들이었다. 부친은 일찍이 초등교원 시험에 합격했다가 6.25 와중에 합격증이 소실돼서 다시 경찰공무원 시험을 봤다고 했다. 부친은 그에게 튀어 보이려 하지 말고 평속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당부했단다.

먼저 그가 어떤 연유로 법대를 진학했고 검사라는 직을 갖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제가 어려서부터 스포츠와 운동을 좋아했는데요. 학창 시절 고려대가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어요. 연대와의 정기전을 보면서 선망이 생겼다고 할까요. 법학과는 시험 점수가 맞아서 갔어요. 선생님은 다들 최고라고 여기는 국립대 다른 과를 권하기도 했지만 저는 고대를 가고 싶었어요. 그러고선 사법시험 합격했는데, 사실 저는 검사가 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를 부모님께 인사시켰는데, 아버님이 결혼 승낙 조건으로 검사를 하라고 했어요. 당시만 해도 부모님 세대는 자식이 안정적인 공직에 나가는 걸 영예로 생각하는 정서가 있었거든요.”

그가 23년에 걸친 공직을 마친 것은 지난 여름이다. 그에게 새로운 보직이 주어졌는데, 그는 퇴임을 택했다. 그는 검사가 된 이후 어떤 특정한 자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평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임을 결정했다는 것. 검사장 승진을 하게 되면 몇 년 더 자리를 지킬 수 있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살고 싶은 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퇴임 무렵 굴지의 대형로펌의 영입 제안을 물리치고 마음이 맞는 이들이 있는,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곳(법무법인 솔)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경력 중에 특이한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법무담당관으로 근무했던 이력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친일파 청산이라는 해묵은 과제에 얽매여 있고 이것이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이에 따라 이념적 갈등이 촉발되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법무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특별한 감정과 소회를 들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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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문제는 정쟁이 돼서도 안 되고 이념 갈등의 원인이 되어서도 안 돼요. 친일청산 문제는 국가 존립의 문제이고 보훈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거든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의 후손을 국가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위원회에 들어가서 보니까 친일파 후손과 독립유공자 후손의 삶이 너무나 달랐어요. 친일파 후손들이 강남이나 용산 등지에서 훨씬 잘살고 있었던 거죠. 그들은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양질의 교육도 받은 데 반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런 현실을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문제로 보고 접근할 때 올바른 해법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가 검찰에서 말년을 보낸 최근 2~3년 사이 대선이 있었고, 정권이 교체되는 와중에서 정치적 정의가 사법적 정의를 압도해버렸다는 세평이 있었다. 적지 않은 법률가들이 이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제가 후배들에게 평소에 설명하곤 했던 건데요. 정치와 사법은 정의를 바라보는 게 전혀 달라요. 정치적으로는 우리 편이 곧 정의이고 우리 편이 아니면 정의가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법적 관점에서의 정의는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봐요. 정치는 이미지 싸움이고 사법은 팩트 싸움인데, 국민들은 팩트엔 관심이 별로 없고 이미지에만 관심이 있어요. 대중은 즉물적이고 감정적으로 정의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정치와 사법이 정의를 두고 다투면 늘 사법이 지게 되어 있어요. 좌든 우든 극단주의를 등에 업고 정의를 외치는 정치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세 권의 묵직한 단행본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책으로 묶었는데, 연재 시절 단 한 번도 마감 시한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절륜을 자랑하는 필자였단다. 열렬한 스포츠광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식견을 십분 발휘해 <검사의 스포츠>라는 책을 저술했고 또 <삼국지>의 다양한 고사와 에피소드를 법리적 관점으로 해석한 책 <검사의 삼국지>도 펴냈다. <검사의 삼국지> 중 흥미로운 내용 하나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 즉 형제의 의를 맺고 한날한시에 죽자고 맹세했어요. 그런데 관우가 죽었을 때 유비와 장비가 따라 죽지 않았고, 장비가 죽었을 때 유비가 따라 죽지 않았어요. 이때 먼저 죽은 관우나 장비의 유족들이 소를 제기할 수 있고, 그 경우 유비 측에서는 민법 108조 ‘상대방의 진의가 아닌 의사표시는 무효로 한다. 다만 상대방이 알지 못했을 경우는 예외다’라는 조항을 들어 반박할 수 있죠. 그냥 굳은 맹세의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는 거죠. 또 민법 103조에 반사회적 법률행위를 규정해 놓았는데,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건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어요. 이 조항을 적용하게 되면 신실한 결의라고 해도 따라 죽는 행위는 반사회적인 행위에 해당하므로 유비의 후손들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거죠.”

대화는 상대방 마음 헤아리는 일
마음의 일치가 ‘소통’

판·검사는 직업일 뿐 인격 아냐
‘사람의 격’ 위해 노력

다음 꿈은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

그는 <검사의 대화법>이라는 책도 펴냈다. 그 책에서 그는 대화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고 마음의 일치가 소통이라는 이야길 했다. 상당히 이상적인 이야기인데, 그는 검사로서 이 원칙을 어떻게 실제에 적용했을까.

“학교폭력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학생을 체벌하다가 학생 손에 골절이 생겨서 학부모가 소를 제기한 것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체벌규정이라는 게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 규정을 어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내심 합의 하에 소를 취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학생의 어머님을 뵙고서 이런 말씀부터 드렸어요. 그동안 정말 마음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러자 그 어머님이 흐느껴 우시면서 마음이 다 풀렸다고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일을 사건으로 대했는데, 처음으로 사람으로 대해줬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검사 양중진에게 대화와 소통은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라는 곳이 워낙 경쟁이 심하고 적자생존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다. 오죽하면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맹렬하고 그악스러운 정글 같은 세태에서 다소 문약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소신이 과연 끝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저는 원래 다툼이나 싸움을 싫어합니다. 저는 말을 하는 것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죠. 경청을 하려고 늘 노력해요. 잘 들어주니까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중학생 시절까지 공부보다는 노는 데 더 열중했다는 그는 검사가 된 이후 은사를 만났는데, 자신을 가리켜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었다고 회고하시는 걸 보고는 적이 놀랐다고 했다.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모범생’은 단순히 성적이 우수하고 품행이 방정한 것만이 아니라 심신의 균형을 아는 건강한 학생이었다는 뜻 아니었을까. 시선이 예리했던 그 은사는 아마도 중학생 시절의 양 변호사에게서 전인적 가능성을 본 것이었을 테다. 그에게 우리 사회에서 법률가가 단지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의 엘리트를 넘어 지식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물었을 때 이런 말을 들려줬다.

“검사나 판사는 직업이지 인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직업이나 인격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검사들이 존중이나 대우를 받는 것은 직업 때문이지 인격 때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람으로서의 격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검사는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지만 제너럴리스트일 필요도 있어요. 저는 공보나 홍보 쪽에서 적잖게 일을 해봤는데, 그런 일을 하면서 세상의 다양한 시선과 입장을 접할 수 있었고 그게 수련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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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변호사라는 명함을 갖게 된 지 4개월이 지났을 뿐인 그에게 남은 삶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변호사로서의 포부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행보가 더 궁금했던 것은 내가 이미 그에게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매력을 확인했기 때문일 터였다.

“대학 때부터 저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 때 가졌던 가장 큰 꿈은 멋진 사랑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은 아내가 이뤄줬어요. 그 이후에는 향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공주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교유했던 나태주 시인님이 저를 두고 시 한 편을 쓰셨는데 향기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꿈도 이뤘고 지금은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말의 눈은 시야가 350도나 된다고 한다. 앞과 일부 측면만 볼 수 있는 사람과 달리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앞뒤 좌우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앞으로만 질주해야 경주마들은 그 시야에 제약을 받는다. 양쪽 눈 뒷부분에 가죽과 고무를 부착해 측면의 시야 범위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종의 눈가면, 차안대(遮眼帶)라고 부른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이들은 어느 조직에서든 앞서 나갈 수 있다. 경쟁에서 곧잘 이기고 승진하고 리더가 된다.

내가 만난 양중진 변호사는 그런 의미에서 경주마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 좌고우면이라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문맥으로 쓰이지만 그 말이 그에게 이르면 긍정적인 용법이 된다. 그는 직진하지 않고 전후와 좌우를 살피면서 천천히 나가는 사람이다. 옆에서 걷는 사람과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의 형편을 살피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법어에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자리’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를 합한 말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상 속 궁극의 지경일 텐데, 양중진 변호사는 여기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 있는 이처럼 보였다. 그는 조직의 평가나 세간의 품평보다 시인으로부터 구한 한마디 덕담에서 자신의 실존적 지위를 확인했던 이다. 그것은 내 눈에 그의 생애가 아무도 모르게 가꿔온 미만하면서도 흔쾌한 기품으로 보였다. 

 


김도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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