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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조인대관
권석천의 시놉티콘
‘가녀장의 시대’ 도태될 자 누구인가?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2-12-2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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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저 사람들 조만간 도태될 거야.”


요즘 뜨고 있는 소설 <가녀장의 시대>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슬아가 방송국 윗분들의 복장 규제를 거부했다가 고정패널에서 잘린 뒤 날리는 조소(嘲笑)다. 자꾸 입안을 맴돈다. “저 사람들 조만간 도태될 거야.”

2022년 한국은, 특히 여성들에게 ‘웃음기가 사라지는’ 오르막길이었다. 7월 15일 인하대에서, 9월 14일 서울 신당역에서, 10월 4일 충남 서산에서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어디 그곳들뿐이랴. 그런데도 ‘여성 혐오’를 ‘여성 혐오’라 부르지 말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하지만 승패가 어떻게 가려질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여성에게 힘겨웠지만
종말을 향해 치닫는 가부장제
한국사회 저변이 바뀌고 있다


첫 번째 징후는 <뿅뿅 지구오락실>이다. 네 명의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문법을 보여준다.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아니에요? 땡!”


산전수전 다 겪은 PD 나영석이 19세 아이돌 안유진에게 “땡!” 소리를 듣는다. “알잘깔딱센”으로 문제를 잘못 냈다가 지적을 당한 것이다. 불의의 한방에 ‘출제 권력’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열한 살 차이 나는 출연자들의 수평적 구도는 연령이나 인기로 서열놀이를 하는 남성 예능과 달라서 좋았다.

두 번째 징후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이 드라마는 남성 중심 사회를 조용히 전복시킨다. 대학생 커플이 임신을 하게 되자 남자 쪽이 학업을 중단하고 미혼부가 된다. 그 사이 여자는 굴지의 로펌 대표로 성장한다. 경쟁 로펌 대표도 여성이다. 우영우를 돕는 남자친구 준호는 지능이나 재력, 근력이 아닌 섬세함의 힘으로 새로운 남성성을 선보인다.

세 번째가 <가녀장의 시대>다. 가녀장? 아비 부(父)의 가부장이 아니고 계집 여(女)의 가녀장이다. 에세이스트 이슬아가 쓴 이 소설의 주인공 슬아는 30대 출판사 대표다. 사무실 겸 가정집으로 쓰는 출판사에 고용된 직원은 두 명. 슬아의 ‘모부(母父)’다.

어머니 복희는 정규직으로 이메일 대응과 식사 준비 등을 한다. 과거의 가부장 치하와 다른 점은 가사노동에 대한 대가를 통장으로 따박따박 이체 받는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웅이는 비정규직으로 청소와 운전, 배달을 하며 역시 월급과 수당을 받는다. 근무시간엔 서로 깍듯하게 존댓말을 쓴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소란스럽네요. 내려가서 싸우세요.”


가녀장은 경제권뿐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까지 갖고 있다. 모부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소녀가장과 다르긴 다르다. 웅이는 쓰잘머리 없는 권위의식 내지 책임감에서 해방돼 정확히 1인분의 삶을 살아간다.

기껏해야 예능, 드라마, 소설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저변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생각이 바뀌면 삶이 바뀌는 건 금방이다. 세상이 다시 퇴보하고 있다고 낙담하곤 하지만 10년 단위로 보면 확확 달라져 있다. 이런 때일수록 방향을 못 읽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분명한 건 ‘가부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가부장이 평생 직업이나 되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자들은 단언컨대, 조만간, 도태될 것이다. 뉴스를 보다 보면 그런 군상들이 보인다. 누구누군지 말할까, 말까. 아, 말하지 않으련다. 가부장이란 종(種)의 멸종 여부가 경고한다고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권석천(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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