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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송년 모임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 두 녀석을 만났다. 이제 50줄에 들어서서였을까? 으레 직장과 승진 이야기로 한 해를 보내왔는데 이번에는 자녀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두 친구 모두 자녀들이 고3이 되어 입시를 치렀는데, 수능시험을 거의 만점에 가깝게 받았다고 했다. 한 친구의 자녀는 문과 쪽이고 다른 친구의 자녀는 이과 쪽이었다.
내가 좀 알려진 인구학자고 ‘정해진 미래’의 작가라고, 나에게 자녀 진로를 상담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문과는 경제학부나 정치학부를 보낸 후 로스쿨에 진학시켜 법조인을 시키겠다는 것이고 이과는 어디든 의대를 보내 의사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둘 다 너무 좋은 선택이라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답정너’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의대는 좋은데, 절대로 로스쿨은 보내지 말아라. 똑똑하니 더욱 법조인을 시켜서는 안 된다!" 의외의 답변에 문과 자녀를 둔 친구가 왜냐고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구학적으로 볼 때 좋은 직업은 희소한데 전문성이 있고 시장이 커져야 한다. 여기에 다른 분야나 기업과의 연동성이 높고 확장성까지 크면 더 좋다. 만일 그 확장성이 국내로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나쁜 직업은 정확히 반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직업으로서 의사와 법조인의 위치는 갈린다. 특히 지금 대학에 진학하는 청년들이 기성세대인 내 나이가 되었을 때의 전망은 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전문성과 희소성으로 보면 앞으로도 의사나 법조인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크기에서부터 스토리는 갈릴 텐데, 그 스토리의 중심에 고령화가 있다. 불과 14년 뒤인 2037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이 된다. 고령인구가 많아지면 의료 시장은 당연히 커진다. 법률시장은? 인구의 1/3이 고령자가 되면 개인 간이든 기업 간이든 송사(訟事)의 건수가 늘어날까? 의료시장의 명확성을 법률시장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분야나 기업들과의 확장성은 어떠한가? 이미 의료계는 생물학이나 공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결되어 엄청나게 큰 산업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IT기술 및 플랫폼사업과 접목해 스타트업 산업의 중심으로 떠 오르고 있다. 의료계의 확장성은 끝이 어디가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의대를 나와서 반드시 환자를 보는 의사가 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법조계는? 법조계가 법학을 벗어나 다른 학문 분야와 연결되어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법조계에서 잘 나간다는 산업은 대형 로펌 말고 뭐가 있을까? 확장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전망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보건의료 산업의 시장은 이미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고 있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 명확하다. 법조 시장은 지금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국가라는 틀을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에서 잘나간다는 대형 로펌도 해외에 나가면 위용이 걷힌다. 앞으로는 바뀔까? 회의적이다.
내 설명을 듣고 자녀를 법조인으로 키우고 싶다던 친구가 실망해서 물었다. 그럼 뭘 시켜야 하나? 나는 정 다른 진로가 떠오르지 않으면 일단 바라는 대로 로스쿨에 보내되, 변호사시험에 통과해도 법조인만 보지 말고 다른 직업에도 눈을 열어두라고 말했다.
그 친구가 볼멘소리로 답했다. 그럼 뭐하러 로스쿨을 가냐, 처음부터 다른 길을 택하고 말지. 이번에는 내가 답이 궁해졌다. 법률신문 독자들께서는 어떤 답을 해 주실 것인가?
조영태 교수(서울대 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