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적 판단과 결론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사실을 확정한 다음, 거기에 필요한 법을 가져다 적용하면 된다. 무척 단순해 보인다. 이런 간결한 과정을 거친 판결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법이 규정해 놓았기 때문인가, 법원의 권위 때문인가? 재판의 결과가 정당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논증이다. 재판은 논증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결론이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논리적 증명의 결과라는 것이다.
논증주의가 아닌 것으로 들 수 있는 대표적 방식은 결정주의와 결단주의다. 법적 결정주의는 입법 단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내용과 의미는 법 문언에 결정되어 있으므로, 법관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재현하듯 적용만 하면 의무를 다한다. 결정주의에서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논증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법적 결단주의는 결정주의와 반대로 법관의 판단이 결론이라는 것이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종의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반드시 밝힐 필요는 없다. 자격을 갖춘 법관이 행한 재판의 결론은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논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도 안 되고, 법관이 마음대로 결단해서도 안 된다. 극단적 두 방식의 결함을 교정하여 고안한 것이 논증주의다. 재판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면 수용한다는 태도다. 논리적이란 어떻게 보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는데,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사법작용이 합리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피기 위해
사법부 바깥에서 수많은 검증 작업들이 진행돼
법률신문도 법조의 충실한 검증의 마당이 될 것
논증을 어떻게 하느냐는 복잡하다. 논증이론은 논리학의 기초가 전제되어 있기에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 진실이나 진리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사법절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논증을 어떻게 습득하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한마디로 재판 과정의 논증은 따로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는다. 종전의 사법연수원은 물론 로스쿨의 커리큘럼에 없다. 판사의 연수 과정에 직무 교육의 일환으로 교양강좌처럼 개설할 수는 있으나, 법관이라면 누구나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은 아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불합리하게 보이고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재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결과의 정당성을 담보할 논증을 전혀 배우지 않는 사람들이 법을 논증하다니.
그러나 개별 판사는 판결문 작성을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논증을 익힌다. 논증의 방식은 기존의 재판이나 판결문 작성 행위와 절차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법철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법률가도 법의 이념이나 목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재판의 논증 과정을 세밀화하고 일반화하면 좋겠지만, 법의 논증이란 것도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재판의 정당성 근거를 발견하고 바라보는 하나의 측면에 불과하다. 누구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야 하는 황금률이 아니다. 법의 논증이론은 법관이 재판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재판을 검증하는 외부 작용의 도구로 이용하기에 적절하다. 사법작용의 결과가 옳은지 그른지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유용하다. 판례 평석은 대표적 사례다.
국가의 사법작용이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살피기 위하여 사법부 바깥에서 수많은 검증 작업이 이루어진다. 법률신문도 검증의 마당 역할을 수행한다. 법률가들이 논증적 사고를 발휘하는가 감시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의 논증적 사고도 필요하다. 새해를 맞은 신문사 내면의 결의 하나는 이것이다. “법조계의 충실한 검증의 마당이 되겠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