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국민은행
top-image
logo
2023.06.08 (목)
지면보기
한국법조인대관
권석천의 시놉티콘
나의 슬기로운 담배 생활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1-09 07:14

2022_synopticon_face.jpg2022_synopticon.jpg

 

한 해가 시작되는 이맘때면 늘 그가 생각난다. 정말 오랜 기간 애증의 관계였다. 숱하게 결별을 선언했지만 그는 결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너 때문에 힘들어. 제발 날 버려줘.” 하지만 그는 나를 포기하지 않은 채 긴 세월을 함께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와 헤어진 지 어언 5년. 그런데도 가끔씩 그가 돌아올까 봐 가슴 졸이곤 한다. “오랜만이야. 내가 없어서 좋았어?” 그는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것이고, 기어코 다시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두 글자. 담배다.

사실, 그에겐 숨겨진 장점들이 많다. 그중 한 가지는 대학 선배에게서 들었다. “담배를 피우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 알아?” “아, 정말입니까?” 흡연에 그렇게 ‘신박한’ 효과가 있다고? 니코틴이 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해서 그런 걸까? 답은 허무했다. “담배 피우면 치매 걸릴 때까지 장수하기는 힘들다고….”

또 하나는 사회학적인 장점이다. 그를 매개로 한 ‘흡연(吸緣)’이 혈연, 지연, 학연만큼이나 끈끈하다는 사실, 아는 사람은 안다. 술이 세지 않은 나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담배로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흡연자를 만나면 반가웠다. 담배로 안면을 트고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으니까.

그의 신세를 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16년 전 신문사를 옮겼을 때도 그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터. “이번에 A 선배가 국장 된다는 얘기 들었어요?” 흡연실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고급 정보였다. 일찍이 로펌 변호사 출신 여성 정치인은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늘 정보에 있어서 소외되고 있다는 의구심이었다…회사 현관 앞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오가는 정보에서조차 소외된다는 생각에 담배 피우는 자리에 카메라를 좀 달아놓고 싶다는 여성 동료들도 있었다.”(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여성’이라는 ‘동문’>)

흡연, 그 은밀한 사회학
“종요로운 것이 너이로되 후세에 다시 동거지정을”


그뿐이랴. 글을 쓸 때 마지막에 끽연을 한 뒤 탈고하는 게 오래된 루틴이었다. 흡연을 중단한 뒤 한동안 죄의식에 시달렸다. ‘한 개비 피웠으면 글이 조금 더 나아졌을 텐데….’ 보내는 마음은 부러진 바늘을 애도하던 ‘조침문(弔針文)’과 다르지 않았다. “종요로운 것이 너이로되…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물론 그와 헤어지고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1년 365일 그를 대동하고 다녀야 했다. 음식점 들어가기 전이나 나온 후에 어디에서 피울까 항상 허둥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 발을 디뎌야 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그를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예전처럼 실내 흡연이 가능했다면, 비흡연자 우위의 세상이 열리지 않았다면 담배 피우는 일이 번거롭지 않았을 것이고 금연의 결심도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후미진 골목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이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궁금하다. 소수정예가 될수록 관계는 더 돈독해지는 법. 하지만 참고 또 참는다. 비록 그리스도는 아니지만 ‘최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또다시 그와 종신계약을 맺어야 한다. 어떤 자유는 뭔가를 하는 데서 얻지만, 어떤 자유는 뭔가를 하지 않는 데서 얻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또 하루를 가까스로 넘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리걸 에듀
1/3
legal-edu-img
온라인 과정
전사원이 알아야 할 계약서 작성 상식
고윤기 변호사
bannerbanner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논단·칼럼
인기연재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8.24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배석준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02호
발행일자
1999.12.1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