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네 장면에 크게 놀랐습니다. 브라질에서 대선에 불복한 (보우소나루 지지) 시위대가 의회·대통령궁·대법원에 난입한 사건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난입 사건의 재연이었습니다. 입법·사법·행정의 상징적 장소를 동시에 난입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입니다.
작년 말 독일에서 현직 판사를 포함한 쿠데타 세력 수십 명이 체포된 사건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독일 연방 검찰이 대대적인 체포에 나선 것은 무장 쿠데타 세력의 규모가 크고, 정부 요인 암살, 군·경찰 장악,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의 계획이 매우 구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브라질 사태 모두 ‘부정 선거’를 주장하며 대선 패배에 불복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도 부정 선거 주장과 대선 불복 심리 확산에서 비슷한 사태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크 아탈리가 <미래의 물결>에서 “사람들은 오늘의 아프리카가 언젠가는 오늘의 유럽을 닮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내 생각에는 오늘의 유럽이 오늘의 아프리카를 닮게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은 ‘김어준 현상’입니다. ‘나꼼수’ 이래로 ‘겸손은 힘들다 뉴스 공장’에 이르기까지 김어준 현상은 식기는커녕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음모론’·‘반지성주의’·‘진영 논리’·‘편파 방송’ 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슈퍼챗 세계 1위가 어디 그리 쉽습니까. 유튜브 방송 동접자 수도 세계에서 5위 안에 들었다니 이쯤 되면 정말 겸손은 힘들겠습니다. 미디어 시장에서도 ‘콘텐츠 프로바이더’ 파워가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습니다. 김어준 현상은 더 이상 ‘병리 현상’이 아니라 ‘문화 현상’으로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검찰 출두 장면입니다. 언제부턴가 사법 리스크를 ‘정치적’으로 돌파하려는 전략이 민주당의 뉴 노멀이 된 듯합니다. 당사자에게는 리스크가 큰 무모한 전략으로 보입니다만 진영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운동권 방식을 닮았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지점입니다. 그런 대응은 민주화 운동에서는 유효한 전략이지만 정치에서는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낼 명분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민주화의 프리즘으로 보기 때문에) 지도부와 조직을 하나로 묶는 것이 좋은 전략이지만 정치에서는 (사법 리스크를 개인의 부패 프리즘으로 보기 때문에) 정치인과 당을 분리하는 게 합리적 전략입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전략이 제 눈에는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제가 놀랐던 마지막 장면은 나경원 사태(?)입니다. 이준석과 유승민은 그렇다 쳐도 나경원마저 이른바 ‘윤핵관’과 ‘장핵관’에게 집단린치 당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준석 대표 축출, 100% 당원 투표 룰 개정, 유력 경쟁자 제거로 정말 ‘윤석열 당’을 만들려는 걸까요.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게 됐습니다.
‘윤석열 당’이 현실이 되려면 김기현을 당 대표 만들고, 그 지도부가 총선까지 붕괴하지 않고, 총선 승리를 해야 합니다.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은 셋 다 100% 가능하다고 믿을 겁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셋 다 가능성이 50% 밑으로 보입니다. 만약 이 시나리오가 불안하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플랜B로 안철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나경원은 어떻게 할까요.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대통령실과 충돌 이후 제게도 의견을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농담 식으로 상책·중책·하책을 알려드렸습니다. “상책은 사퇴한 후 전당대회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중책은 사퇴한 후 아무 말 없이 있는 것입니다. 하책은 사퇴한 후 곧바로 출마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새해 벽두에 저를 놀라게 한 네 장면은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어쩌면 깊게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주장과 비슷한 현상은 비슷한 원인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정치 분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세상, 우리가 알던 정치는 이젠 없습니다.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